[理知논술]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토플주제/에드거 앨런 포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에드거 앨런 포는 토플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미국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시인, 단편소설가, 편집자, 비평가이자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에서는 단편소설의 개척자이자 추리소설, 범죄소설의 선구자적인 인물로 꼽힌다. 》

단편소설… 시… 비평… 근대문학 첫 페이지를 쓴 ‘비운의 천재’ 에드거 앨런 포

포는 섬뜩하고 공상적인 내용의 단편소설이나 시를 통해 현대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문학에 끼친 공헌은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 소설에 그치지 않고 비평에까지 미치고 있다. 광범위한 장르의 문학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세계도 직·간접적으로 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포는 시로도 유명하지만, 일화에 지나지 않는 단편소설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탐정소설을 많이 썼으며, 심리 스릴러 장르를 개척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시 ‘갈까마귀(The Raven)’, 단편소설 ‘어셔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등이 있다.

포는 흥미로운 집필 기법을 창안했다. 그는 때때로 소설의 결말을 먼저 써놓은 후, 결말을 유도하는 등장인물과 상황을 설정해가며 역으로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현재 이런 기법은 포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양식인 범죄소설이나 탐정소설의 창작에 이용되고 있다.

포가 범죄를 해결하는 내용의 탐정소설을 쓴 최초의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오귀스트 뒤팽은 셜록 홈스를 비롯한 많은 소설 속 탐정들의 원형적 인물이 됐다. 사실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 ‘춤추는 인형들의 비밀’은 포의 작품 ‘황금벌레’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소설 모두 미스터리의 중심에는 암호가 있다. 코난 도일은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수적인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사건 해결에 탐정의 도움을 받는 경찰을 등장시키는 방식도 차용했다. 탐정이 논리와 추론으로 범죄를 해결한다는 발상 또한 포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뒤팽과 마찬가지로 홈스도 그를 둘러싼 세상과 자유롭게 교류하지 못하는 고립된 천재로 그려졌다.

포는 보스턴에서 배우 2세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고, 어머니도 세 살 때 잃고 말았다. 포는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의 성공한 담배 사업자인 존 앨런(John Allan)에게 입양되었다. 그의 중간 이름을 ‘Allen’이라고 잘못 쓰는 일도 종종 있지만, 실제로는 이 집안의 성을 따른 ‘Allan’이 정확한 표기다. 포는 1826년 버지니아대에 입학했지만, 학교는 일 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이때쯤 자신의 도박 빚 때문에 의붓아버지와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군에 사병으로 입대해서 2년이 되는 해에 ‘태멀레인과 그 밖의 시(Tamerlane and Other Poems)’라는 처녀 시집을 출간했다. 이때 의붓어머니인 프란시스 앨런이 죽었고, 그는 두 번째 책인 ‘알 아라프, 태멀레인(Al Aaraaf, Tamerlane and Minor Poems)’을 출간했다. 포는 이 당시 박물학자 에드먼드 레버넬 박사를 알게 되어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후에 이 경험을 살려 ‘황금벌레(The Gold Bug)’라는 단편을 썼다. 이 저서는 그에게 실질적인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포는 말년에 여러 저작물을 발표하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지만, 결코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1835년 겨울에는 리치먼드에서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Southern Literary Messenger)’의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포는 1837년 1월까지 이 직책으로 일했다. 이 기간에 당시 26세이던 포는 13세의 조카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다. 그는 결혼 생활 중에 소설 ‘아서 고든 핌 이야기(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로 약간의 주목을 받았다. ‘버튼(Burton)’의 편집자로 취업해 수많은 기사, 소설, 비평을 쓰기도 했다. 포는 이후 평생에 걸쳐 여러 잡지사를 전전했는데, 잡지 지면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자신의 문학 이론을 펼쳤다.

미국 대공황이 닥치면서 포는 가난과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며 과음을 했다. 그는 그레이엄을 떠나 뉴욕으로 돌아와서 ‘이브닝 미러’에서 잠깐 일한 뒤, ‘브로드웨이 저널’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리고 1845년 1월 29일 ‘갈까마귀’를 발표했다.

브로드웨이 저널은 1846년에 폐간되었고, 그는 뉴욕 주 브롱스포드햄의 시골집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의 아내 버지니아가 1847년 2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포는 아내의 사망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얼마 후 7세 연상의 과부이자 시인인 새러 헬렌 휘트먼에게 구혼하고, 그해 12월에는 결혼 단계에 이르렀지만 그의 음주벽과 휘트먼 부인 가족의 반대로 혼담이 깨졌다. 1849년 시 ‘애니를 위하여(For Annie)’와 ‘애너벨 리(Annabel Lee)’를 발표한 포는 같은 해에 죽었다. 자신의 숙원이던 잡지 ‘더 스틸러스(The Stylus)’를 만들 계획으로 뛰어다니던 중에 10월 3일 볼티모어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는 워싱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나흘 후 아침 5시에 4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래서 나는 밤새도록/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의 곁에 눕는답니다/그곳 바닷가 무덤/파도 철썩이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속에서’ (포의 시 ‘애너벨 리’ 중에서)

김은주 영재사관학원 예스영어사관 평촌본원 초등팀장

▶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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