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넋잃은 유족

  •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5분


23일 오후 10시경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탑 인근의 처참한 사고 현장. 사고를 일으킨 관광버스가 아반떼 승용차를 완전히 깔고 올라타 있다. 이 사고로 아반떼 승용차에 타고 있던 7명은 모두 숨졌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10시경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탑 인근의 처참한 사고 현장. 사고를 일으킨 관광버스가 아반떼 승용차를 완전히 깔고 올라타 있다. 이 사고로 아반떼 승용차에 타고 있던 7명은 모두 숨졌다. 연합뉴스
브레이크 고장 관광버스, 승용차 덮쳐 7명 참변

수유동 내리막길 10여대 연쇄충돌

서울시내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내리막길을 달리던 관광버스가 승용차를 덮쳐 7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23일 오후 10시경 버스 운전사 이모 씨(59)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 외국인 관광객을 내려놓고 인근 4·19사거리 방향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내리막길을 200∼300m 달리던 이 씨는 “삐삐” 하는 브레이크 이상 경고음을 몇 차례 들었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운행을 계속했다.

하지만 브레이크는 곧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상태가 됐고 가속이 붙은 45인용 대형 관광버스는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주차된 차들을 추돌하며 내려오던 버스는 결국 앞서 가던 아반떼 승용차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버스는 아반떼를 160여 m나 밀고가면서 주변 차량과 오토바이 10여 대를 들이받고 아반떼 위에 올라탄 채로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아반떼 운전자 이묘숙 씨(45·여) 등 이 차에 타고 있던 7명이 모두 숨졌고 다른 차량에 타고 있던 5명이 중경상을 입고 인근 수유동 대한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부상자인 김은영 씨(41·여)는 “운전하다 횡단보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빵’ 하는 굉음과 함께 뒤에서 무언가가 들이받았다”며 “사람들이 차량 문을 열어줘 겨우 밖으로 나와 보니 버스는 아반떼를 완전히 깔아뭉갠 채 전봇대를 박고 서 있었다”고 말했다. 목격자인 윤은주 씨(47)는 “관광버스가 수십 m를 미끄러져 내려와서야 겨우 멈춰 섰고 곧이어 불길이 타올랐다”고 전했다.

아반떼에 함께 타고 있다가 참변을 당한 7명은 초등학교 서무 행정담당 교사와 교육청 공무원 등 40, 50대 교육공무원들. 20년 전부터 친목모임을 가져온 이들은 이날 저녁 모임을 마치고 가까운 찻집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멀지 않은 곳이라서 7명이 몸을 포개 한 차에 탔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24일 빈소가 마련된 대한병원 장례식장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숨진 곽향숙 씨의 큰언니는 “얘 없으면 이 집은 밥도 못해 먹는데 고등학생인 막내아들과 군대 가 있는 큰아들은 이제 어떡하느냐”며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묘숙 씨의 남동생인 이원식 씨도 “서무 직원으로 20년 넘게 성실하게 일했고 오랜만에 모임을 가진 것이었다”며 “시집도 안 간 누난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사고를 수사 중인 서울 강북경찰서는 운전사 이 씨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버스의 제동장치에 이상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4·19사거리 쪽으로 가다 브레이크 이상을 느끼고 저속으로 내려왔는데 과속 방지턱을 넘으려고 하는 순간 차를 멈출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씨가 세 차례 브레이크 이상 신호음을 듣고도 차를 세우지 않는 등 처음부터 감속이나 정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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