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금융대학원 ‘2기 학생투자펀드’ 1년간 운용해보니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7분


KAIST학생투자펀드(KSIF) 대안투자팀 멤버인 성상욱 씨(KAIST 경영공학 석사과정)가 1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최종현홀에서 열린 KSIF 운용보고회에서 투자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금융전문대학원
KAIST학생투자펀드(KSIF) 대안투자팀 멤버인 성상욱 씨(KAIST 경영공학 석사과정)가 1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최종현홀에서 열린 KSIF 운용보고회에서 투자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KAIST 금융전문대학원
교과서밖 돌발 변수에 좌충우돌

환율폭등에 헉… 졸다가 주문실수

지난해 12월 KAIST 금융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신창호 씨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해외선물(先物) 거래를 돕고 있는 금융회사 담당자였다.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거래한 옥수수, 콩 선물 만기일이 다가왔는데 알고 있나요? 지금 매도를 안 하면 현물(現物·실제 물건)이 배달될 수도 있어요. 빨리 팔아야 합니다.”

설핏 잠이 들었던 신 씨는 시계를 봤다. 오전 2시가 넘었지만 벌떡 일어났다. 하마터면 투자수익은커녕 옥수수 자루가 태평양을 건너 날아올 판이었다. 그는 KAIST 학생투자펀드(KSIF)에서 파생상품 거래를 맡고 있었다.

○ 2주년 맞은 KSIF

KSIF는 학생들에게 금융현장 실습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서남표 총장이 아이디어를 내 2007년 출범했다. 학교 측이 10억 원의 종잣돈을 제공하면 학생들이 주식매매부터 위험관리까지 모든 자산운용을 전담하는 형태다. 시장분석을 통해 투자방향을 제시하는 투자전략팀, 가치주와 성장주에 각각 투자하는 주식운용1·2팀, 선물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대안투자팀 등 내부 조직도 일반 자산운용사와 비슷하다. 미국 샌디에이고대에서 학생운용펀드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용한 경험이 있는 금융전문대학원 김동석 교수가 지도를 맡았다. 대학가에 아마추어 주식투자 동아리는 많지만 학생들이 학교 자금을 직접 굴리는 것은 이 펀드가 국내에서 처음이다.

17일 2기 학생들은 자신들을 믿고 돈을 맡겨준 대학 은사들과 금융계 인사들 앞에서 지난 1년간(지난해 4월 16일∼올해 2월 28일)의 운용보고서를 발표했다. 성적은 학생들치고는 괜찮은 편이었다. 220일 동안 누적수익률 ―11.10%. 비록 원금에 손실이 나긴 했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39.55%)와 비교하면 결코 나쁘지 않은 성과다. 이날 운용보고를 지켜본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은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금융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이 정도 성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교과서에도 없는 금융위기, 악전고투

학생들은 지난 한 해 금융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시장의 돌발 변수들과 맞서 좌충우돌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시장전략팀 박시윤 씨(경영공학 석사과정)는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일주일에 한 차례 있는 운용회의가 바늘방석이었다고 말했다. 이론적인 모델에 따라 전략을 짜면 시장은 번번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는 “투자전략을 브리핑할 때마다 시장 예측이 한발 늦는다고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식운용 2팀은 지난해 말 주가가 계속 떨어지자 공매도(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파는 투자기법으로 주가가 예상대로 떨어지면 이익을 얻는다)를 시도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공매도와 관련된 내용을 낱낱이 공부하고 논문까지 탐독한 뒤 매매를 시도하려는 순간 정부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라며 공매도를 전면 금지해 허탈감에 빠졌다.

KSIF 조교 이효섭 씨(경영공학 박사과정)는 “달러 선물에도 투자를 했는데 지난해 말 예상치 않게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을 때가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 운용은 이론과 현실을 연결하는 기회

학업, 운용, 연구 세 가지를 병행하다가 저지른 실수도 많았다.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대안투자팀은 주로 미국 시장을 통해 거래하느라 낮과 밤이 뒤바뀐 올빼미 생활을 해야 했다. 깜박 졸다가 ‘사자’ 주문을 ‘팔자’ 주문으로 잘못 내는 실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손실을 내는 옵션 만기가 몰려 있는 시기엔 수업시간에 노트북PC를 들고 가 교수의 눈치를 보며 시장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효섭 씨는 “팀원들은 자기의 실수로 손실이 나면 속이 상해 밤에 잠을 못자거나 끼니를 거르는 사례도 많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비록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모델을 현실에 적용해 나가면서 배우는 과정이 의미 있었다고 자평했다. 학생들은 이 같은 실무경험을 살려 일선 금융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기 학생 중 졸업생 4명은 자산운용사, 한국투자공사(KIC) 등에 취업했다. 졸업 후 파생상품 설계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박시윤 씨는 “전공은 전자공학이지만 경제학 관련 경험은 펀드를 운용하면서 쌓을 수 있었다”며 “금융 현장에 나가면 KSIF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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