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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30일 22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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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출신 주리시 바젠팅 씨(35)와 딸 강혜린 양(9). 필리핀에서 지내는 동안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혜린이는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서툴렀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혜린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네" "아니오" 정도만 겨우 대답하는, 말 없고 수줍은 많은 아이로 변해갔다. 혜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한국말이 서툴러도 따라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국수양부모협회 사무실에선 '다문화·싱글맘 협회'가 마련한 다문화 가정의 싱글맘 자조 모임이 열렸다. 한국인 싱글맘과 바젱틴 씨 등 필리핀인 싱글맘과 아이 40여 명이 모였다. 외로움과 낯섦으로 사람이 그리웠던 이들은 금세 친해졌다.
사무실은 시골 장터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혜린이는 엄마 손을 잡은 채 수줍은 표정으로 얌전히 놀고 있었다. 이름과 나이를 물었지만 혜린이는 부정확한 한국말 발음으로 이름과 나이만 말해주고 엄마 등 뒤로 재빨리 숨었다. 바젠팅 씨는 한 숨을 내쉬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느라 아이 교육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싱글맘 결혼이주여성의 현실이다. 똑같은 싱글맘이어도 한국인 싱글맘은 자치단체 등을 통해 매달 50만~60만 원 정도를 지원 받지만 외국 국적의 싱글맘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들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체류허가만 얻었을 뿐 한국 국적은 취득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고도 엄마의 국적 때문에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다문화·싱글맘 협회의 한 관계자는 혜린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아이가 엄마 국적 때문에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다니, 참 어이없는 일 아닌가요? 최소한의 교육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현실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할텐데…."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