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아직도 호랑이 10마리 살아있다

  • 입력 2009년 3월 6일 12시 04분


일본대사관 앞 항의 시위_ 임순남 회장은 해마다 3.1절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고려범 멸종위기 원인주범 항의시위’를 연다. 올해도 어김없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일본대사관 앞 항의 시위_ 임순남 회장은 해마다 3.1절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고려범 멸종위기 원인주범 항의시위’를 연다. 올해도 어김없이 1인 시위를 벌였다.
호랑이 추정 발자국_1998년 2월 임순남 회장 일행이 발견한 대형 야생동물의 발자국. 호랑이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랑이 추정 발자국_1998년 2월 임순남 회장 일행이 발견한 대형 야생동물의 발자국. 호랑이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순남 씨.
임순남 씨.
백두대간을 마음껏 활보하는 그날까지...

한국 호랑이보호협회 회장 임순남씨

해마다 3월1일이 되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호랑이 영정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 2004년부터 6년째 ‘호랑이 시위’를 하고 있는 그는 올 해 3.1절에도 어김없이 시위에 나섰다. 그가 내 건 대형사진에는 일제시대 일본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한 호랑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일본의 책임을 촉구하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임순남(53) 한국호랑이보호협회 회장. 그는 여전히 한국에 10마리 이상의 호랑이가 살아있다고 믿고 있으며 한국 호랑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일제는 우리나라 호랑이(고려범) 멸종 위기 원인의 주범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사과하고 보호, 보존에 참여해야 합니다.”

일반인들은 한국 호랑이(고려범)가 멸종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임 회장은 10년 넘게 남한 야생 호랑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본인의 조사를 근거로 최소한 10마리 이상의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거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강원도 화천에서 발견된 암호랑이와 새끼 발자국을 근거로 추정해 보면 경기도 북부일대와 강원도 지역을 활동무대로 최소 4마리, 치악산 목격담을 근거로 해 태백산맥등 강원도 남부를 중심으로 최소 2마리, 부산 기장에서 발견된 새끼 발자국으로 미루어 경남북도 일대 최소 4마리, 이렇게 적어도 10마리 이상의 호랑이가 남한에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산야에서 호랑이가 생존해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목격담, 혹은 대형야생 육식동물의 생존 흔적이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최근까지도 임 회장에게 호랑이 목격담에 관한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고 한다. “작년 10월 달에도 강원도 고성에서 전화가 왔어요. 산삼 캐는 분이었는데, 간밤에 산삼 자리에 묶어 두었던 대형 사냥개 한 마리가 머리하고 꼬리만 남긴 상태로 발견됐어요. 호랑이 같은 대형 육식동물의 짓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동아닷컴 이철 기자

희미한 ‘흔적’을 찾아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기록영화 촬영 일을 하던 임 회장은 일을 그만두고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남한 야생호랑이(고려범)를 찾는 일에 매달렸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숱한 민화의 주제이자 산신령으로 까지 불리며 우리나라의 산하를 호령했던 호랑이의 기개를 그는 되살려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정책적으로 한국 호랑이 말살정책을 폈습니다. 독립군들의 용맹한 기개와 올곧은 정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이 호랑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죠.”

우리나라 호랑이(고려범)는 일제 때 마구잡이 사냥으로 인해 멸종되다시피 했다. 1917년 야마모토 타자부로(일본 고베의 사업가)가 이끄는 정호군(征虎軍)-호랑이를 잡기 위한 군대-은 호랑이 사냥에 불을 당겼다. 이후 1924년 2월 1일자 매일신보에 “1월 21일 강원도 횡성 산중에서 팔척짜리 암컷 호랑이가 송선정이라는 자에 의해 포획되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린 이후 남한에서는 더 이상 호랑이를 볼 수 없었다. 이후 한국전쟁은 일제의 탄압과 수탈로 생채기 난 우리나라의 산야를 더욱 황폐화 시켰다.

1996년 4월 환경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사무국에 “남한에 야생 호랑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임 회장은 환경부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호랑이 목격담은 끊이질 않는데, 정부에서는 호랑이가 멸종되었다고 했어요. 봤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말이죠. 호랑이가 없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그는 우리나라 호랑이 전문가와 환경부 관계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우리나라에는 호랑이 전문가가 없으며, 남한에 호랑이는 없다’는 것이었다.

호랑이의 ‘흔적’을 발견하다

임 회장은 자비를 들여 러시아 호랑이 생태 연구가들을 찾아갔다. 근 3년을 왕래하며 호랑이 생태 조사방법을 배워왔다. 그리고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남한 호랑이(고려범)를 찾는 일에 나섰다. 몇 개월씩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야영을 하는 일은 다반사였다고 한다.

1998년 2월의 늦겨울, 임 회장은 강원도 화천에서 호랑이로 추정되는 발자국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대형 육식동물의 발자국이 분명했다. 전날 ‘컹’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곳이었다. 능선을 거슬러 지나간 듯 수십 개의 발자국이 눈길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크기는 9cm이상이었다. 호랑이가 남한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사회를 들썩였다.

많은 언론들이 호랑이 목격담이나 출몰설이 있는 곳을 추적했지만 호랑이는 좀처럼 ‘살아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1년에는 대구MBC가 호랑이로 추정되었던 대형 야생동물을 무인카메라로 촬영하는데 성공했지만 조명 밖의 범위에 있어 그 모습은 흐릿했다. 영상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호랑이가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임순남 회장은 남한에 호랑이가 지금도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금도 목격담이 끊이질 않고 있고, 1998년에 발견한 발자국은 호랑이 것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표범은 아무리 성장해도 발자국이 9.5cm 이상 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발견한 발자국은 9.5cm가 넘어요. 호랑이 발자국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죠.”임씨는 그것이 호랑이 발자국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호랑이는 영원히 사라진 것일까

“제가 연구한 호랑이의 이동속도로 볼 때 시베리아에서 강원도까지 이동하는데 3~4일이면 충분합니다.”임 회장은 1970년대 이전까지 자유롭게 호랑이가 남북을 왕래 했다고 주장한다. “1968년 1ㆍ21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휴전선의 철책선이 완벽하지 않아 호랑이는 자유롭게 백두대간을 왕래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 철책선이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남한에 갇히고 만 것이죠.”

남한의 자연환경을 고려했을 때 일반인의 상식으로 호랑이가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은 ‘잘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먹이만 충분하면 행동반경이나 영역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증가한 고라니,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호랑이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강원도 산간지역에는 대낮에도 차 몇 대 안다니는 길들이 많아요. 그런 길은 동물들을 위해서 그냥 뒀어야 하는 길들이죠. 지금 호랑이는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사람들과 공존하며 같이 사는 겁니다.”

2002년에는 강원도에서 대형짐승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되는 송아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송아지는 머리와 다리 일부만 남아 있었다. “하룻밤 사이 30kg을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동물은 호랑이 밖에 없어요. 먹이가 줄어든 호랑이가 민가 주변까지 내려온 것입니다.”임 회장은 호랑이의 개체수를 늘이고 민가의 피해를 막으려면 수렵 허가를 제한해 호랑이의 먹이를 일정수준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한 번도 카메라에 호랑이를 담을 수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중국의 예를 들었다. “중국 훈춘 지역에 30여 마리의 야생 호랑이가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호랑이 전문가가 모여 그 호랑이를 한번 찍어보자 해서 카메라150대를 투입시켰어요. 그런데 2년 만에 한 마리 촬영에 성공했어요. 30마리가 넘게 있는 지역에서 말이죠.”실제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러시아 보호구역에 호랑이 생태 촬영을 위해 오는 방송팀이 호랑이 그림 한 컷을 위해 몇 개월을 눈밭에서 허비하는 일은 다반사다.

임 회장은 카메라 150대는 아니어도 장비만 제대로 갖추어진다면 강원도나 경기 북부 지역에서 충분히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비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부친다고 했다.

경기도 원당에 자리 잡은 ‘타이거 캠프’의 얼룩무늬 컨테이너에서는 호랑이 탐사를 위한 장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날것처럼 거칠지만 지난 15년 여간 쌓은 노하우가 깃들어 있다. 적절한 시기가 되고 장비들이 완성되면 다시 탐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한국 호랑이(고려범)를 복원하라

한국인들에게 호랑이는 단순한 맹수 이상의 특별한 동물이다. 그 크기와 용맹스러운 모습 때문에 과거에는 산하를 호령하는 신령으로 추앙받기도 했고 수많은 속담과 민화의 주요한 소재였을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기도 했다. 88 올림픽 마스코트로 세계에 ‘호랑이 나라’라는 이미지를 알렸고, 대한축구협회의 축구 국가대표 엠블럼으로도 쓰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야생의 산하에서 호랑이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과거 산신령으로 불리며 백두대간을 지배했던 호랑이는 과연 우리에게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지난 1월 경기도 연천군은 한국 호랑이(고려범)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연천군은 임 회장과 함께 준 야생 상태에서 호랑이가 서식할 수 있도록 하는 ‘호랑이 보호구역’을 만들어 한국 호랑이(고려범)의 명맥을 이어갈 계획이다. 러시아에서 1차로 5월 중에 호랑이 3마리를 들여와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평화체험특구 6600㎡에 2중 펜스를 설치하고 방사해 호랑이를 야생상태로 보존, 연구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연천군 정책개발과 관계자는 “호랑이 수출입 허가가 까다로워서 일정을 확정할 수 없지만 5월에 3마리를 도입할 계획은 아직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또 그는“연천군은 멸종 위기에 처한 한국 호랑이의 연구를 지원하고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계속 사업을 진행 할 것”이며 “임순남 회장은 호랑이 전문가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천군과 임 회장은 작년 11월에 러시아 하바롭스크(러시아 국립 야생동물자활센터)에 다녀왔다. 여기서 러시아 관계자들과 호랑이 도입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임순남 회장은 3월중에 러시아에 갈 계획이다. 호랑이 국내 반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호랑이를 포획해 현지 적응을 시키고 건강검진을 할 방침이다.

임 소장은 “DMZ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고대산에서 호랑이를 복원하면 훗날 DMZ 일부 구간도 호랑이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DMZ를 명실상부한 환경생태평화특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한민국은 ‘호랑이 나라’

임순남 회장이 이일을 시작했을 때부터의 목표는 ‘우리나라가 호랑이 국가라는 것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과제는 우리나라 산하에 호랑이가 아직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없다’는 생각을 바꿔주고 싶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40%는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호랑이가 남한에 존재한다는 것을 국민 100%가 믿으면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생겨 지금의 경제위기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표동물인 호랑이가 북한 러시아 만주 호랑이들과 만나서 우리가 동해의 햇살을 볼 때 호랑이들도 같이 그 햇살을 보며 옛날부터 살턴 터전에서 함께 공존하는 것. 우리가 호랑이 나라라는 것을 전 세계에 인정받는 것, 호랑이로 시작된 남북한 연결통로가 평화통일로 이어져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이 연천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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