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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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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 안에 단독비행 통과해야… 평균 25% 탈락
졸업후 KT-1, T-50 훈련 거쳐야 정식 파일럿
“레디 포 테이크오프(이륙준비 완료).”
지난달 27일 충북 청원군 공군사관학교 예하 제212비행교육대대 내 활주로.
옆 좌석 교관의 지시를 복명(復命)하며 계기점검을 끝낸 학생조종사 허윤철 생도(23·공사 57기)가 T-103 4인승 훈련기를 출발선에 조심스럽게 멈춰 세웠다. 헤드셋을 착용했지만 프로펠러의 굉음에 귀가 먹먹했다.
바로 앞에서 비상(飛上)하는 다른 훈련기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조종간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공사생도의 입문비행을 뒷자리에 동승해 취재하는 기자도 초조한 심정이었다.
잠시 뒤 교관의 이륙명령이 떨어지자 기체는 활주로를 질주하더니 곧 땅을 박차고 사뿐히 날아올랐다. 창 밖의 아름다운 정경에 한눈팔 겨를도 없이 곧장 대청호 상공으로 이동해 비행훈련에 돌입했다.
교관인 옥재형 대위(33·학군 27기)의 지시에 따라 허 생도가 조종간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기체는 2000m 상공을 오르내리며 상승과 강하, 선회 등 다양한 기동을 반복했다.
특히 급강하와 급선회를 할 때마다 몸무게의 4배 가까운 중력가속도(G)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어지럼증과 멀미 증세도 밀려왔다. 훈련기라고 얕보지 말라던 공군 관계자의 충고가 뇌리를 스쳤다.
허 생도가 정해진 비행 고도와 각도, 속도에서 벗어나면 교관의 따끔한 지적이 날아들었다. “속도가 자꾸 떨어지잖아…. 왜 비행 각도를 유지하지 못하나….”
교관의 계속되는 지적에 따라 기수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허 생도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1시간여 뒤 부대 활주로에 안착한 허 생도는 총 15회의 입문비행 과정 가운데 13회를 끝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파일럿을 꿈꿨고 비행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F-15K 조종사와 테스트 파일럿을 거쳐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입문과정에서 탑승하는 T-103 훈련기는 러시아 항공기 제작사인 미그(MIG) 산하 업체가 제작한 것으로 2004년 ‘불곰사업’(러시아에 빌려준 경협차관을 무기로 받은 사업)에 따라 23대가 도입됐다. 부대 측은 “T-103 훈련기는 조작 실수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회복 능력이 뛰어나 첫 비행을 하는 생도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종”이라고 설명했다.
비행훈련의 첫 단계라고 결코 녹록지 않다. 평균 약 25%가 입문과정에서 비행 자질 부족 등으로 탈락해 일반 병과로 가게 된다.
교관인 박재범 대위(공사 48기)는 “간혹 첫 비행에서 고도의 공중기동을 해낼 만큼 타고난 비행 감각을 가진 생도를 발견하지만 방향 및 지형감각이 크게 떨어져 조종간을 잡지 못하는 생도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취재 당일에도 87명의 생도 가운데 최종평가인 단독비행을 완수한 생도는 2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생도는 남은 훈련 동안 단독비행을 완수하지 못하면 파일럿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또 이 과정은 말 그대로 입문(入門)일 뿐이다. 1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베테랑 조종사로 남는 비율이 20% 안팎에 그쳐 빨간 마후라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최미나 생도(23·여)는 “영화 속의 첨단 전투기가 아닌 연습기도 내 뜻대로 조종이 안 될 때 속이 상한다”면서도 “공군 최초의 여성 조종사인 편보라 대위의 뒤를 잇고 싶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