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발생 1분전 시계찬 남자가 30초간 시너 뿌려”

  • 입력 2009년 2월 10일 02시 59분


■ 검찰이 밝힌 사건 진상

“남경남, 상가 분양권 요구하라며 농성 부추겨

경찰, 화재발생 직전에야 에어-안전매트 설치

진압작전 용역직원 참여 동영상에선 못찾아”

6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9일 발표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0일 사건 발생 직후 검사 19명, 수사관 24명 등 43명으로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정병두 1차장)를 구성해 20일 동안 수사를 벌여 왔다.

검찰 수사를 통해 의혹이 밝혀진 것도 있지만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된 불을 누가 냈는지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 쟁점과 수사 결과를 정리한다.

▽망루 화재는 시너와 화염병 때문=참사 당일 오전 7시 19분 농성자 가운데 1명이 농성건물 옥상 망루 4층 계단 부근에서 망루 외벽을 뜯어내던 경찰을 향해 30초가량 통에 든 시너를 뿌렸다. 잠시 후 4층에서 던진 화염병이 3층 계단 부근에 떨어지며 주변에 뿌려져 있던 시너에 불이 붙었고, 불똥이 1층 바닥에 고여 있던 시너 위로 떨어지자 곳곳에 인화물질이 쌓여 있던 망루 전체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는 게 검찰의 추정이다.

경찰의 망루 진입 때 절단기에서 불꽃이 튀었다거나, 특공대원들이 탄 컨테이너가 망루에 충돌하면서 화재가 났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검찰은 밝혔다.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진압 당시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은 물론 인터넷방송 ‘사자후TV’, 진보신당의 ‘칼라TV’ 등이 촬영한 동영상 원본까지 모두 21종의 영상물을 분석했다. 이 동영상들은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에서 ‘영상확대기법(magnifying)’을 통해 초(秒) 단위로 정밀 분석됐다.

사자후TV의 동영상에서 망루 4층 농성자 일부가 망루의 벌어진 함석 틈으로 시너를 뿌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시너를 뿌린 사람은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것 같은 남자였다. 그러나 화면을 확대해도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망루에서 쏟아진 액체가 시너인지 아니면 경찰이 쏜 물대포 때문에 망루 안에 고인 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검찰은 가로 6m 세로 6m 높이 8m 크기의 망루 모형을 만들어 화재 당시 상황을 재현해 봤다. 그 결과 망루의 구조상 안에 고여 있는 물은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진압에 용역 직원 참여하지 않아=진압작전을 앞두고 경찰은 용산소방서에 분말소화제를 뿌리는 데 쓰이는 화학소방차를 요청했다. 그러나 실무자 간 협의과정에서 계획이 바뀌어 현장에는 유류화재 진화가 가능한 수성막포 장착 펌프차량 2대가 출동했다.

소방용 화학분말은 밀폐된 공간에 살포됐을 때는 질식 위험이 있어 설령 화학소방차가 출동했더라도 사용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검찰 조사를 받은 소방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경찰은 당시 에어매트와 안전매트를 준비했으나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 조각 때문에 건물 바깥 바닥에 깔지 못하고 있다가 망루 화재 직전에 설치했다.

철거용역 업체 직원들이 진압작전에 참여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러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건물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농성자들이 설치한 쇠파이프 장애물을 제거한 것은 경찰특공대원이었으며, 용역업체 직원은 등장하지 않았다.

MBC ‘PD수첩’에서 ‘POLICIA’라고 쓰인 방패를 들고 있는 장면이 찍힌 3명은 용역업체 직원이 아니라 농성자들의 투석과 화염병 투척을 피해 화장실을 다녀오던 인근 세입자로 밝혀졌다.

사고 전날인 지난달 19일 철거용역업체 직원이 남일당빌딩 옆 건물 옥상에서 농성자들의 망루 설치를 방해하려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린 것은 경찰의 요청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기 위해 소방호스 설치를 요청했지만 처음에는 수압이 낮아 사용하지 못한 채 옥상에 내버려 두었다. 경찰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소방관이 수압을 높여 놓았고, 방치된 채 놓여 있던 소방호스를 본 용역업체 간부가 부하 직원에게 물대포를 쏘도록 했다는 것이다.

▽전철련 의장이 점거농성 부추겨=수배 중인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은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측에 “보상금을 받고 물러나기보다는 재건축 기간에 영업할 임시상가와 재건축 이후 상가 분양권을 요구하라”며 이번 농성을 부추긴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민대책위 간부들은 지난해 8월 농성자금 6000만 원을 갹출했으며 올 1월에는 망루를 짓는 데 필요한 자재와 시너, 새총 등을 준비했다. 점거농성 사흘 전인 지난달 16일에는 인천 남구 도화동의 한 공터에서 전철련 회원의 지도로 망루를 짓는 연습도 했다. 기소된 농성자 20명 가운데 용산4구역 상가 세입자는 5명뿐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