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까마귀 부탁이니 들어주라”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정대근 前농협회장 “노건평 씨가 수차례 전화해 청탁” 법정 증언

정 前회장 “정화삼 씨가 봉황무늬 골프공 선물”

정화삼 씨 측선 “봉황 아닌 태극무늬였다” 반박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가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해달라’고 집요하게 부탁했다는 정황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규진) 심리로 열린 노건평 씨 등에 대한 재판에서 정 전 회장은 “노 형(노건평 씨 지칭)이 ‘같은 까마귀(고향사람이라는 뜻)’이니 가급적 (세종증권 인수) 부탁을 들어주라고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고 밝혔다.

정 전 회장은 “2005년 중반께 노 형이 사람을 만나 달라고 전화했고, 얼마 뒤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이 찾아왔기에 바쁜 척하며 명함만 받고 돌려보냈다”며 “그러나 노 형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왜 얘기를 안 들어주나’라고 해 노 형이 사람이 좋아서 또 누구 꾐에 빠졌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 측이 ‘노 씨로부터 농림부 장관직을 제의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정 전 회장은 “열린우리당이 전국구 의원을 제의하기에 노 형한테 정치를 안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고, 노 형이 지나가는 말로 ‘무슨 정치냐, 장관은 몰라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기인) 정화삼 씨 형제에게 준 성공보수금에 대해 노 씨가 ‘(내 몫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여러 차례 독촉했다”며 “노 씨가 지나치게 전화해 휴대전화를 따로 하나 더 만들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무늬 골프공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정 전 회장은 “2005년 초 정화삼 씨가 회장실에 한 번 찾아 왔는데 봉황무늬 골프공 2세트를 선물로 가져왔다”며 “이 골프공을 (농협에서) 판매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밝혔다.

정 씨를 만난 적은 있지만 세종증권 인수 얘기는 전혀 없었다는 취지였다. 정 전 회장은 “봉황무늬 골프공을 보고 정 씨가 청와대 배경을 과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고 덧붙였다. 당시 정 씨는 서울의 골프공 제조업체인 S사의 충북 청주공장 전무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에 정 씨 변호인은 “당시 골프공을 선물한 것은 맞지만 봉황무늬가 아닌 태극무늬였다”고 반박했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정 씨도 답답하다는 듯이 “태극무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은 정 씨 변호인의 질문에 “비서가 (골프공 상자를) 열어볼 때 나도 봤는데 봉황무늬가 맞다”고 거듭 확인했다.

S사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비매품인 국빈 선물용으로 우리 업체만 공식적으로 ‘청와대 봉황무늬’ 골프공을 만들었다”며 “전두환 정권 때까지 만들다 봉황이나 태극무늬 골프공은 판매하면 안 된다고 해서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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