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독서로 논술잡기]‘추사1,2’

  • 입력 2009년 2월 2일 02시 58분


◇‘추사1,2’/한승원 지음/열림원

수백만원대 족집게 과외… 명문대 진학… 출세…

오늘의 한국, ‘과거시험 병’ 조선과 과연 다를까

‘글씨가 시(詩)이고, 시가 곧 글이다. 그림이 삶이고, 삶은 곧 죽음이다….’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경지를 드러낸 말이다. 그는 삶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고고한 정신적 자유를 얻었다. 그의 정신적 위대함은 큰 좌절과 절망을 이겨낸 결과다. 다음의 글을 논술과 관련시켜 보자.

『(가) 하루는 박제가가 얼큰히 취해 이렇게 말했다. “박제가가 사랑하는 바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에 깊이 푹 빠져 넋을 잃고, 병적으로 집착(癖)하는 바보입니다. 한 벗은 매화꽃 한 송이를 그리려고 그 꽃의 표정과 몸짓과 향기를 몇 날 며칠 밥을 굶어가며 들여다보고 또 킁킁 향기를 맡고, 그것을 한 번 그리고 열 번 그리고 스무 번 그리고 서른 번 백 번 그립니다.

그러나 더 똑똑한 바보는 자기의 일에 그렇게 미쳐 있다가도 어느 날 문득 확 떨쳐버리고 훨훨 자유자재로 벗어나 휘휘 돌아다닐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렇게 벗어났다가는 다시 또 문득 그 일로 되돌아가 더 치열하게 미쳐 살아야 하겠지요.” 추사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추사 1, 98∼99쪽]

(나) 박제가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소인이 구역질을 할 정도로 미워하는 간사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첫째는 과거시험이라는 병에 걸려 있는 양반과 그 자제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그들 자제의 독선생 노릇을 하면서 밥을 빌어먹는, 머리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족속입니다.

조선의 모든 양반은 자기 자식들을 과거에 입격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그 양반들을 도와주는 훈장들이 있는데, 그들은 과장에 나가보지 않았으면서도 이번 과거에는 ‘누가 시험관이 될 터인데, 그들은 이런 경향으로 출제를 할 것이므로 이런 부분을 외워야 한다’하고 예단을 합니다.”[추사 1, 99∼100쪽]』

위의 글은 박제가가 제자인 김정희에게 준 가르침이다. (가)는 박제가가 사랑하는 바보들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학문연구 태도를 강조한다. (나)는 박제가 미워하는 두 부류를 설명하고 있다. 신분 상승이나 유지를 위한 학문 추구는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논제를 만들고 답안까지 작성해보자.

① ‘(가)에 드러난 연구태도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학문 추구 현상을 비판하시오’를 만들어 보자.

현대사회에서는 학문의 본질보다 현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얄팍한 학문적 지식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진감래(苦盡甘來)’식으로 학문을 연구하기보다 학문을 통해 쉽고 빠르게 이익을 얻고자 한다.

이런 과정에서 순수 학문의 본질은 퇴색하고, 학문 그 자체도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가)는 ‘미쳐야 미친다’는 정신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박제가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의 학문연구 태도야말로 자신만의 분야에 최고의 경지를 이루고자 하는 장인정신이다. 그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다.

② ‘(나)에서 박제가가 지적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현재 우리사회에서 찾아보고,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다는 말을 비판하시오’를 만들어 보자.

현대사회에서 학문은 종종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좋은 취업자리를 위해 명문대 입시에 열을 올리고, 대학 졸업자들이 전공과는 상관없이 출세가 보장되는 국가고시에 뛰어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액의 족집게 과외도 성행한다. 반대로 진정 학문의 본질을 추구하는 ‘학자’는 소수에 그친다.

진정한 교육열은 순수하게 학문이 목적이 될 때 쓰는 말이다. 취업이 어려운 불경기라고는 하지만 학문의 본질을 외면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은 것이 아니라 ‘교육열이 낮은 나라’일 뿐이다.

이도희 송탄여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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