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시어머니가 날 ‘아가야’ 불러 당황”

  • 입력 2008년 12월 24일 02시 59분


경기도가 최근 주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방청객들이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의 발표를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경기도
경기도가 최근 주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방청객들이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의 발표를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경기도
“한국어엔 단어하나가 여러뜻 지녀 실수많아”

“아이업고 버스타면 자리 양보하는 훈훈함도”

■ ‘한국어말하기대회’ 참가한 외국인 주부들

“남편과 시누이는 ‘엄마’라고 하는데 며느리인 저는 왜 ‘어머님’이라고만 불러야 하나요?”(전정숙 씨·베트남)

“당면만 들어 있는 한국식 순대를 보고 실망했어요.”(이선화 씨·중국)

아시아 10개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여성 31명이 17일 경기 수원시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 모였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경기지역 31개 시군의 ‘대표선수’들이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 이상 한국의 부인, 며느리, 어머니로 살아온 이들은 서투른 한국말로 자신들의 ‘좌충우돌’ 한국 생활기를 털어놨다.

○“한국 문화 어려워요”

외국인 며느리들이 가장 어려워한 것은 역시 언어. 특히 가족간의 독특한 호칭이나 표현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 온 지 2년 된 곽유이(21·베트남) 씨는 “남편이 친구들 앞에서 ‘우리 강아지 이리와’라고 불러 화를 낸 적이 있다”며 “베트남에서 ‘강아지’는 욕인데 한국에서는 예쁘고 귀엽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남편한테 사과했다”고 말했다.

같은 나라에서 온 짠티마히하(23) 씨도 “시어머니가 저를 찾으면서 ‘아가, 어디 있니?’라고 하시기에 다른 집에서 아이가 온 줄 알았다”며 “그 ‘아가’가 나를 가리키는 것이어서 조금 이상했다”고 말했다.

도티탄응아(26·베트남) 씨는 “‘먹는다’는 표현이 밥을 먹을 때만 쓰는 줄 알았는데 ‘화장이 잘 먹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한국어는 단어 하나에 여러 의미가 있어서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모습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샤말리(27·스리랑카) 씨는 “처음에는 남편 친구들이 피부색이 다르다고 싫어해 많이 힘들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모두 나를 좋아하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일본 출신의 우에다 도모에(28) 씨는 “버스가 너무 빨리 달려서 무섭고, 타고 내릴 때 반드시 손을 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버스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래도 한국은 ‘제2의 고향’

31명의 외국인 주부들은 한국에 대한 애정의 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필리핀 출신 헤이젤 로하니(25) 씨는 “시어머니와 함께 사우나에 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옷을 모두 벗고 목욕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오히려 시어머니와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일본의 구니오카 야스에(32) 씨는 “아기를 업고 버스에 타면 많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주고 가방도 들어준다”며 “한국은 정이 많은 나라”라고 밝혔다.

응우옌홍푸엉(26·베트남) 씨는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다르지만 모두 한국이라는 같은 땅에 살고 있다”며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 샤라포바 질라보(25) 씨가 최우수상을, 대만의 황의순(31) 씨와 일본의 우에다 도모에 씨가 각각 우수상을 받았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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