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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7일 11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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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씨는 대전의 한 출연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연구원이다. 올해가 지난 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면 그는 출연연을 나와야 한다. 2년 이상 일을 한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이다. C씨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안이지만 결과적으로는 2년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연구원은 출연연 옮겨다니는 메뚜기
C씨는 현재 다니는 출연연에서 쫓겨나면 다른 출연연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연구 과제를 함께 수행했던 다른 출연연의 연구단이나 비슷한 연구를 하는 곳은 자리만 있으면 들어가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새로 들어간 출연연에서도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2년 뒤에는 다시 새로운 출연연을 찾아봐야 한다. C씨 같은 비정규직 연구원은 이렇게 정착하지 못하고 출연연을 전전하는 것을 ‘메뚜기 뛴다’고 표현한다. 메뚜기처럼 이 출연연에서 저 출연연으로 건너다니기 때문이다.
C씨와 같은 처지인 친구들은 상당히 많다. C씨는 “현재 대전에 있는 출연연 연구원의 절반은 비정규직”이라며 “우리는 ‘무보직연구원’이라고 불린다”고 밝혔다.
“무보직연구원은 정규 연구원에 비해 대우가 열악해요. 복지혜택도 받을 수 없고 식대 지원이 없어 자기 돈을 내고 밥을 먹죠. 앞으로가 더 문제에요. 처음 비정규직으로 들어오는 친구들은 이곳에서 경력을 쌓아서 대기업이나 다른 연구원에 취직하려고 하죠. 그런데 무보직연구원이 맡는 일은 핵심기술과 거리가 멀어요. 그러니 어떤 곳에서 우리를 뽑아주겠어요.
주변에서는 중소기업이라도 가라는 조언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박사 마치고 이곳에서 4~5년 정도 지내다보면 눈이 높아져요. 중소기업을 가느니 외국 대학 연구소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들어가 경력을 완성시키는 편이 낫죠. 이것을 빨리 결정하지 못하면 계속 메뚜기를 뛰는 수밖에요.”
하지만 C씨가 가장 바라는 것은 출연연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정식 연구원으로 받아주는 것이다. 연구팀은 하던 연구를 차질 없이 지속할 수 있고 C씨도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편하게 연구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지만 정말로 만들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정책을 보면 일자리를 만든다기보다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요. 물론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만들면 노동력이 적재적소로 분산되겠지만 기업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취업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거든요.”
●이공계 일자리 창출은 미래 진행형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는 현재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만드는 정책에는 주력하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정부조직이 개편되며 담당 부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경부에는 개편 전 과학기술 분야 일자리를 담당하던 산업기술인력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 부서는 업무를 교과부 과학기술인력과와 지경부 산업기술기반팀으로 이전한 뒤 사라졌다.
교과부 과학기술인력과와 지경부 산업기술기반팀의 관계자는 “아직은 고급 과학기술인력이나 기업맞춤형 인재만 육성할 뿐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계획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경부의 관계자는 “과학기술분야 일자리 창출은 지경부의 주력 업무가 틀림없다”며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각 부처에 일자리와 연계된 사업을 많이 발굴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덧붙였다. 내년부터 관련 사업이 진행되면 이공계 인력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C씨는 여전히 우려가 많다.
“지금 정부에서 하는 일은 기업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을 정부에서 부담해 기업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 고급 인력은 차고 넘치는데 말이죠. 그래도 앞으로 정부 사업이 진행된 뒤에는 관련 기업과 직종이 많이 생겨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일자리를 만드는 것까지도 안 바래요. 제발 ‘있는’ 또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일자리를 없애지나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부, 이공계인력 재교육은 진행중
정부가 일자리 창출은 못하고 있지만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청과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T)는 이공계 인력을 재교육시켜 중소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중소기업청은 ‘인력채용 패키지 사업’(관련 홈페이지 job.kbiz.or.kr)을 통해 이공계 미취업자를 중소기업에 취업시키고 있다. 신청자는 1~3개월의 직무교육을 거친 뒤 중소기업에서 2~3개월 정도 일을 하게 된다.
일을 하는 동안 신청자가 취직을 하지 못할 결격 사유가 없다면 중소기업은 신청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올해는 100억의 예산으로 진행했지만 내년에는 150억으로 증가하는 만큼 많은 이공계 미취업자들이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WIST에서는 여성 과학기술인을 대상으로 ‘맞춤형 인턴십 프로그램’(관련 홈페이지 www.wist.re.kr)을 시행하고 있다. 인턴십 프로그램의 신청자는 직무교육을 거친 뒤 중소기업에서 6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WIST는 이 기간 중 신청자가 받는 봉급의 50%를 지원하며 신청자는 인턴 기간이 끝나면 결격 사유가 없는 한 100%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