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학교에 마을도서관을]자매결연 군부대와 ‘도서 결연’

  • 입력 2008년 6월 24일 03시 01분


122호 강원 인제 하남초교

학교 고쳐준 군인 아저씨들도 같이 읽어요

20여 가구뿐인 마을 어린이들 삼촌역 톡톡

1000권 무상대여… “GOP에도 책방 생긴셈”

16일 오후 강원 인제군 상남면 하남초등학교.

‘아홉 번 꼬부라진 양의 창자(九折羊腸·구절양장)’가 여기일까. 국도를 벗어나 산길을 몇 고개쯤 돌아든 곳에 자리한 하남초교는 유치원생까지 쳐도 학생이 25명뿐인 작은 학교. 평소라면 풍금에 어우러진 노랫소리가 청량한 꾀꼬리 음색일 터. 그런데 이날따라 뜬금없이 굵은 쇳소리(?) 애국가가 들려온다.

우렁찬 바리톤 음성의 주인공은 인근 산악군단 5805부대(부대장 이종렬 중령) 소속 군인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본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122호 하남초교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을 맞아 군인 30여 명이 학교를 방문한 것. 이른바 ‘개관식 축하 사절단’이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부대와 하남초교는 자매결연한 사이.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진짜 가족처럼 지낸다. 하남초교 아이들이 있는 촌락은 겨우 20여 가구. 대부분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가정이다. 이들에게 군인아저씨들은 듬직한 삼촌이자 큰형인 셈이다.

5805부대의 ‘대민지원’을 살펴보면 이는 금방 드러난다. 틈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학교에 일손이 부족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엔 종종 군인들이 투입된다. 반대로 병영행사를 열면 주민 교사 학생들이 참여해 마을잔치 분위기를 낸다. 이건희 상병은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판소리를 배워 공연을 할 때 만나보면 맑고 구김살이 없어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학교마을도서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부대는 큰 역할을 했다. 도서관을 리모델링할 때 부대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도서관 사서 일도 군인들이 돕기로 했다. 오일주 교장은 “워낙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산촌이다 보니 군인들이 도서관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며 “군인들은 티도 내지 않고 궂은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학교 측도 5805부대를 위해 큰 결심을 했다. 학교마을도서관을 열며 제공받은 성인도서 가운데 1000권 정도를 군부대에 무상으로 순환 대여하기로 했다. 이 부대장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부대원이 많지만 양껏 공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면서 “이번 기회에 대대본부뿐 아니라 인근 기지나 GOP(전방관측소)에도 책을 돌려가며 소중히 읽겠다”고 기뻐했다.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 취지에 맞게 개관식 이후에는 학생과 군인이 참여한 작은 이벤트도 열렸다. 학교마을도서관 개관 기념 백일장에서 군인들도 나름의 글 솜씨를 뽐낸 것. ‘그대들’이란 시를 쓴 정문조 상병 등 5명이 당선돼 상을 받았다. 입상한 이지현 상병은 “군인 신분으로 접하기 힘든 기회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면서 “이웃 주민들에게 작은 보탬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은 앞으로 다른 지역 학교마을도서관들도 하남초교와 5805부대처럼 서로 도울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할 계획. 대표를 맡고 있는 김수연 목사는 “열악한 농촌지역은 운영 인력을 구하기가 워낙 어려운데 군부대와의 협조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민간 군인 가리지 않고 함께하는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인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