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언어영역/극, 시나리오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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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행동의 문학… ‘연출가의 눈’으로 읽고 생각하자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모처럼 극문학이 출제되었다. 출제된 천승세의 ‘만선’은 정전으로 인정되던 작품이었다. 수능이 시작된 이래 극(시나리오)문학은 고전극으로 ‘봉산탈춤’(1996)이, 희곡으로는 오영진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2001), 최인훈의 ‘둥둥낙랑둥’(2003)이, 시나리오로는 이범선 원작의 ‘오발탄’(2002)이 출제됐다. 극문학은 다른 장르에 비해 출제빈도가 비교적 낮다. 극문학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에서도 2007학년도까지는 많이 출제되지 않았다. 출제된 작품도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 유치진의 ‘토막’, 이근삼의 ‘원고지’ 등 대체로 잘 알려진 것이었다. 》

극(시나리오)은 무대에 올리거나 상영할 것을 전제로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 때 고려할 사항을 묻는 문제가 빠짐없이 출제되고 있다. 극문학은 소설과 더불어 등장인물의 대립과 갈등을 축으로 하는 문학이기에 인물의 심리와 태도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또 소설은 서술자의 역할이 중요한 데 비해 극은 인물 간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서 전개되기 때문에 대사의 의미나 기능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표1〉극의 빈출 유형 및 요소
순위문제 유형
1무대의 형상화(영상화) 방식의 이해
2인물의 심리, 태도 및 역할의 이해
3대사의 의미 및 기능 파악
4독자의 반응 파악

▒ 소설과는 어떻게 다른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연극의 대본’인 희곡은 상연을 목적으로 하기에 여러 무대 조건의 제약을 받게 된다. 희곡은 또한 배우, 무대 관객과 함께 연극의 한 요소이다. 허구적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희곡은 소설과 같지만 소설처럼 사건을 묘사하거나 서술하지 않고 대화와 행동을 통해 사건을 제시하는 산문 문학이다. 희곡은 배우가 장치, 소도구, 조명, 음향효과를 갖춘 무대에서 사건을 실제로 연기하고 등장인물을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다음과 같은 희곡의 특성을 이해하면 문제 풀이에 도움이 된다.

⑴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 즉 연극의 각본이다. 이로 인해 많은 제약이 따른다.

⑵대사의 문학: 희곡은 인물의 대사를 기본으로 한다. 서술자가 서술과 묘사를 하는 소설과 달리, 희곡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줄거리가 전개된다.

⑶행동의 문학: 희곡은 인간 행동을 표현하는 문학이다. 희곡은 배우의 연기를 지시해 무대 위에서 인간의 행동을 표출한다. 따라서 희곡에서의 행동은 압축과 생략, 집중과 통일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⑷현재화된 인생 표현: 희곡은 지금 무대 위에서 직접 인생을 표현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를 현재화시켜서 표현한다.

⑸희곡의 관습: 희곡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대사와 행동으로만 표현하기 때문에 관객이나 독자들과 일정한 묵계가 이루어진다.

서술자의 개입이 없다는 점을 빼면 희곡과 소설은 유사하다. 소설의 일반적 요소인 플롯의 전개, 성격의 묘사, 대화의 사용, 배경 설정, 주제 등은 희곡에서도 대체로 나타난다. 그러나 희곡에서는 소설과 같은 작가의 직접적 묘사나 해설이 가능하지 않다.

한편 시나리오는 영화촬영을 목적으로 한 글, 즉 영화의 각본으로 영화 장면의 순서, 배우의 대사와 동작 등을 적은 대본이다. 영화 제작상의 기법을 염두에 두고, 플롯을 구체적이고 극적으로 구성하며 특수한 용어를 써서 배우의 회화나 동작을 규정한 글이다. 영화 제작상의 촬영 대본인 콘티(conti)와는 다르다. 콘티는 시나리오를 토대로 화면마다 배경, 인물, 동작, 촬영 위치와 각도 등을 지정한 대본이다.

시나리오는 희곡처럼 주로 대사로 표현되지만 시공간적 배경의 제한을 희곡보다 적게 받으며, 등장인물의 수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같은 직접적인 심리 묘사가 불가능하고, 장면과 대상에 의해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 이렇게 이해하자

극(시나리오)을 감상할 때는 우선 무대(배경 및 상황)가 어떤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른바 ‘극중 장면 상상하며 읽기’다. 작품을 공연하거나 영화로 만들 때 고려할 점들을 따져봐야 한다. 배우의 표정이나 몸짓 대사는 어떻게 표현할지, 조명 음악 소도구 등 무대장치나 카메라 기법은 어떻게 활용해야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할 수 있을지 연출가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등장인물의 대사도 잘 살펴야 한다. 대사는 인물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주제를 형상화한다. 인물의 심리(내적 갈등)는 독백에, 인물 간의 갈등은 대화에 주로 나타난다. 동시에 인물의 대사를 바탕으로 인물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한 인물의 반응을 살펴본다. 더불어 등장인물의 행동 중 반복되거나 특이한 것을 살핀다. 등장인물의 전후 행위를 살피되 연관 관계를 파악하고 인물의 표정, 어조, 동작 등을 상상하며 읽는다. 그 다음 인물 간의 가치관을 비교한다.

〈표2〉극 예시문항

이때 그물을 메고 풀이 죽은 연철이 들어온다. ㉠네 사람, 우르르 몰려가 연철을 에워싼다.

곰치 그래 을마나 올렸어?

도삼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을 해 줘사 쓸 것 아니라고! 자네 기다리다가 지쳤어! (기대에 찬 얼굴로) 어서 어서 말이나 해 보게!

성삼 석 장은 올랐제?

구포댁 저 사람 무담씨 장난치고 싶응께는 일부러 쌍다구 딱 찡그리고 말 않는 거 봐! 그라제? (수선스럽게 웃어댄다.)

연철 (㉡아무 말 없이 마루 끝에 가 앉으며 침통하게) 놀려라우? 맘이 기뻐사 놀릴 맘도 생기지라우!

곰치 (영문을 몰라) 믄 소리여? (㉢와락 연철의 팔을 붙들고) 아니, 믄 소리여? 엉?

연철 (처절하게) 다, 다 뺏겼오! 아무것도 없이 다 뺏겼오!

일동 (비명처럼) 믓이라고?

곰치 (미친 사람처럼) 뺏기다니? 뺏기다니? 믓을 누구한테 뺏겼단 말이여? 엉?

연철 (처절하게) 빚에 싹 잽혔지라우! 그것도 빚은 이만 원이나 남고……. (절규하듯) 믄 도리로 막는단 말이요?

성삼 (주먹을 불끈 쥐곤) 죽일 놈!

도삼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버리며) 아아!

구포댁 (손바닥을 철썩 철썩 때려 가며) 그렇게 됐어? 뺏겼어? (신음처럼) 허어!

연철 (사립문 쪽을 가리키며) 쉬잇!

임제순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들어온다. 그 뒤로 야릇한 표정의 범쇠 따라 들어와선 눈길을 땅에 박은 채, 뒷짐을 쥐고 마당을 서성댄다. 긴장해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네 사람.

임제순 (능글맞게 웃음을 흘리며) 곰치! 오늘 잘했어! 자네가 제일 많이 했어! 거 참 멋있거등!

곰치 (건성으로) 예에! 예에!

임제순 부서 떼도 몇 십 년 만이지만 부서 크기도 처음이여! 죄다 허벅다리 같은 놈들이니……. (갑자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해 가지곤) 그라제만 나는 손해여! 이익이 없그등! 천상 널린 돈 거둔 것뿐잉께……. 그나마도 일부분만 거뒀으니……. (속상한다는 듯이) 진장칠 놈의 것, 그 돈을 다른 사람한테 줘서 이자만 키웠어도……. 에잇! 쯧쯧!

범쇠 (여전히 마당을 서성대며) 아암!

임제순 곰치!

곰치 (넋 빼고 서선, 헛소리처럼) 예에! 예에!

(중략)

임제순 ……자네 섭섭할는지 모르겠네만은……. (강경하게) 남은 이만 원 청산할 때까지 내일부터 배를 묶겄네! 묶겄어!

곰치 (기겁할 듯 놀라) 예에? 아니 배, 배를 묶어라우?

성삼·연철·도삼 배를 묶다니?

구포댁 (펄쩍 뛰며) 웠따! 믄 말씀이싱게라우? 아니, 해필이면 이럴 때 배를 묶으라우? 예에?

임제순 (단호하게) 나는 두말 않는 사람이여!

곰치 (애걸조로) 영감님! 배만은, 배만은…….

임제순 (손을 저으며) 더 말 말어! (㉣몇 걸음 걸어 나가며) 배가 없어서 고기를 못 잡어! 배 빌려 달란 사람이 밀린단 말이여!

곰치 (따라가며) 영감님! 사나흘 안으로 빚 갚지랍녀! 요참 물만 안 놓치면 되고 말고라우! 제발 배는 풀어 주씨요! 제발!

임제순 (㉤곰치를 떠밀며) 안 돼! 안 된다먼!

-천승세, ‘만선’(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보기>는 ‘연철’과 관련된 설명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연철은 ⓐ무대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을 등장인물과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연철의 첫 대사는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또한 연철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연철은 전달해야 할 내용을 부분적인 정보로 분할하여 점진적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누가 빼앗아 갔느냐는 물음에는 끝까지 명시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연철은 그 인물이 등장하는 시점을 무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 줌으로써, 빼앗아 간 자의 정체를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소개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후에는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며 사태를 관망한다.

① ⓐ ② ⓑ ③ ⓒ ④ ⓓ ⑤ ⓔ

▒ 어떻게 준비할까?

극(시나리오)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하면서 극적갈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출제될 것이다. 낯선 작품이 출제돼도 인물의 대사와 행동, 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주제가 구현되는 양상을 주목하면 큰 문제는 없다. 인물 사이의 갈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주로 지문으로 선정되므로 인물들의 관계에 유념해야 한다. 18종 문학 교과서나 교육방송(EBS) 교재에 수록된 작품들을 공부하면 별 무리가 없다.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 함세덕의 ‘동승’, 이강백의 ‘파수꾼’, 차범석의 ‘불모지’ ‘성난기계’, 유치진의 ‘소’, 이청준 원작의 ‘서편제’ 등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낯익은 작품들을 우선 공부해야 한다.

시나 소설 등 다른 장르의 지문을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문제가 출제될 수 있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이용악의 ‘낡은 집’을 희곡으로 구성하는 문항을 출제한 적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맥락읽기에 해당하므로 내용의 일치를 잘 파악하면 된다. 2005학년도 수능대비 평가원 모의평가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문항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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