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예산 240억 필요” 재정부 “80억이면 충분”

  • 입력 2008년 4월 3일 03시 01분


“충남 태안 기름 유출 같은 사고를 막으려면 대형 방제선이 필요하다. 318억 원을 예산에 반영해 달라.”(해양경찰청)

“훈련용 배를 방제 겸용으로 전환했으니 일단 충분하다. 40억 원만 반영하겠다.”(기획재정부)

해경은 방제선 건조뿐 아니라 방제활동비로도 57억 원을 요청했다. ‘해양오염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어 예년 같으면 그대로 인정됐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재정부는 “방제활동비 세부 내용 중 창고 신축비는 기존 시설을 이용하면 되고 연구용역비와 여비 등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해 25억 원만 반영했다.

기술 인력 양성 차원에서 2005년부터 고용보험기금으로 시행하고 있는 특성화대학 지원 및 전문인력 교육사업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노동부는 올해 이 사업 관련 예산으로 240억 원을 요구했으나 ‘80억 원만 반영하라’는 재정부 지침에 할 말을 잃었다. 재정부는 “교육부의 대학 지원사업과 중복될 수 있으니 내년에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냈다.

예산 조정 때문에 재정부에 여러 번 호출당한 한 공무원은 “명분 있는 사업이라도 요구안을 그냥 들어 주는 법이 없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분위기”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이런 변화는 지난달 12일 재정부가 밝힌 ‘예산 10% 절감’ 방침에 따른 것이다. 재정부는 지난달 말까지 45개 정부 부처와 60개 연기금의 ‘2008∼2012년 중기사업계획’을 대부분 취합했고 현재 세부 지출 규모를 조정 중이다. 중기사업계획 중 2009년 지출 규모는 올해 9월 확정되는 내년 예산안의 상한선 역할을 한다.

재정부는 최근 내년 정부 지출 한도 심의 기준도 바꿨다. 전 부처가 지금까지 자체 판단에 따라 써 온 재량지출 규모를 20% 줄이는 대신 국정과제 추진에 드는 재량지출을 15% 늘리도록 한 것. 이렇게 되면 재량지출이 올해 65조 원에서 내년 62조 원 정도로 3조 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만 해도 지출 한도 심의 기준은 ‘연차별 소요 금액과 사업성을 감안해 사업비를 산정하라’는 식으로 추상적이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정부 부처와 연기금이 내년 지출 예산을 짜면서 재정부 방침에 눌려 당초 요구안을 대폭 줄이고 있다.

하지만 일률적인 예산 절감 기준을 적용하면 꼭 필요한 사업을 못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영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농업이나 중소기업 지원사업 등 다소 정치적인 명분 때문에 배정된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정부는 연기금 운용에 대한 평가작업을 5월까지 마무리해 성과가 미흡한 사업의 비용을 10%씩 줄이기로 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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