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피할틈도 없이 화염폭풍 몰아쳐”

  • 입력 2008년 1월 7일 21시 06분


7일 오후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의 냉동물류센터 ‘코리아 2000’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남은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합]
7일 오후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의 냉동물류센터 ‘코리아 2000’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남은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합]
7일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에 있는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마(火魔)는 수십여 명의 목숨을 삼켰다.

이날 사고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가족들은 오후 3시경부터 현장에서 가족의 생존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발견되는 시신이 한 구씩 늘자 불안한 마음을 참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다.

일부 가족들은 들것에 시신이 실려 나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꼭 살아있을 것"이라며 소방관들에게 매달려 "제발 가족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현장에 있던 한 소방관은 "시신이 완전히 새까맣게 타서 사망자의 신원이나 성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신원 확인을 의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천의료원과 효자원에는 사망자들이 후송됐지만 병원에서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유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부상자 10명 중에도 일부는 중태여서 가족들은 병원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도착한 가족과 친지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침상에 누워있는 부상자를 보고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얼굴, 다리를 포함해 전신에 50% 이상 2, 3도 화상을 입고 서울 구로구 고척1동 구로성심병원으로 옮겨진 천우환 (34) 씨의 아버지 천종길(61) 씨는 목에 관을 삽입한 채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아들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 천 씨는 "3개월 전 결혼한 아들이 출퇴근하기 좋은 곳으로 회사를 옮긴 지 한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며 "사고 소식을 임신한 며느리에게 아직 알리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유치원 교사인 천 씨의 부인(29)은 임신 3개월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 손과 얼굴을 비롯해 호흡기에 화상을 입은 이경희(49) 씨의 동료 김광식(55) 씨는 "이 씨가 3일 전 부산의 냉난방기구업체에서 방열기 시운전을 위해 출장을 왔다 오늘 마무리 작업을 하고 부산으로 내려 갈 참이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날 오후 1시경 서울 강남구 베스티안병원으로 옮겨진 온 박종영(35) 씨는 얼굴에 입은 화상으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약혼녀 안모(33·여) 씨는 "성실하고 밝은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며 "집안 사정이 어려워 결혼을 미루다 올 봄에 하기로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조선족 임춘원(44·여) 씨는 창고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 병원 화상센터 김선규 과장은 "임 씨와 심영찬(49) 씨는 3도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며 "최소 3, 4일은 지켜봐야 생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실종자 가족들은 화재 현장 인근에 있는 코리아2000 구내식당에 가족 대책위원회 사무실을 마련해 향후 대책마련에 나섰다.

홍수영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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