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한국형 로스쿨, 첫 단추 잘 끼워야

  • 입력 2007년 7월 1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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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에는 ‘근대 법학 백주년(1895∼1995) 기념관’이 있다. 1895년에 개소한 법관양성소가 서양식 근대 법학 교육의 효시이다. 올해로 순국 100주년이 되는 이준 열사가 제1회 졸업생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법학 교육이 혁명적 전환시대를 맞았다. 한국에 설치하려는 로스쿨의 원형(原型)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급작스레 통과되어 국민은 물론이고 법학계와 법조계가 당혹스러워한다. 법대생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황당해한다.

세계적으로 법학교육은 학부에서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문대학원(로스쿨) 체제로 변했다. 한국과 일본은 사법개혁과정에서 두 가지 다른 로스쿨 모델을 선택했다.

한국은 대학원에서만 전문 법학 교육을 실시함에 따라 로스쿨을 설치하고자 하는 대학은 법학부를 폐지해야 한다. 일본은 법학부를 그대로 두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한다. 판례법 중심의 영미법 체계가 아닌 실정법 중심의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대륙법 체계를 갖는 나라로서는 한국이 최초로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했다.

로스쿨 도입의 당위성 논의에서 핵심은 시험을 통한 선발보다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 사법시험의 질곡에서 젊은 인재를 해방시키고 대학의 고시학원화를 차단하자는 취지다.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미국식을 선택했다. 기왕에 선택한 이상 이제는 바람직한 로스쿨을 디자인해야 한다.

첫째, 제대로 된 로스쿨이 돼야 한다. 미국식 로스쿨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미국식 시장경제 논리가 철저하게 작동한다. 우리도 로스쿨 설치를 널리 허용해야 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한다. 특정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소수정예 로스쿨에서부터 아시아는 물론 세계 일류 로스쿨과 경쟁하는 대형 로스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로스쿨이 필요하다. 동시에 대학의 자율성에 기초한 로스쿨 사이의 경쟁을 통해 양질의 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로스쿨 도입 구호만 요란했지 콘텐츠 개발이 전혀 안 된 상황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로스쿨 교육은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나오는 킹스필드 교수의 문답식(socratic method)을 떠올린다. 하지만 대륙식 성문법 국가의 특성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법학교육과 미국의 문답식 법학 교육의 조화점을 찾아야 한다.

셋째, 법학사와 비법학사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법학사는 2년, 비법학사는 3년으로 하여 교육연한에 차이를 둔다. 학부에서의 다양한 전공을 로스쿨에서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법적 소양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넷째, 젊은 인재가 하루빨리 시험의 질곡에서 해방돼야 한다. 대학 4년, 로스쿨 3년에 군복무까지 합치면 아무리 빨라도 30대는 돼야 법률가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에는 너무 늦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이면 적어도 로스쿨 재학 중에는 변호사시험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다섯째, 가난한 천재에게 기회를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미국식 대여 장학금 제도는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 법률가를 양산하는 체제이다. 환경이 어려운 수재가 안심하고 공부하는 장학제도와 정책 당국의 배려가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의 반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전 세계에서 몇 나라 안 되는 미국식 로스쿨의 장점을 살리면서 한국형 로스쿨을 정착시키기 위한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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