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쩐의 전쟁’ 속 인문학의 역할

  • 입력 2007년 7월 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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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지 영감은 행복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더 불행하고 외로워졌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돈만 있으면 행복해지리라 믿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들은 스크루지를 언제나 ‘예외’로 여긴다. 빌 게이츠처럼 돈이 많다면 누구라도 신나고 멋진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일단 모든 생각을 접고 재산을 많이 모아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돈 앞에서 평등하다. 돈만 있으면 최고급 저택, 값비싼 음식, 좋은 차 등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신분이 낮다거나 학력이 보잘 것 없다고 해서 고급식당에서 내쫓길 일은 없다. 노력의 대가도, 불행한 사고도 돈으로 보상받는다. 돈이 모든 것을 가늠해 주는 사회. 누구라도 돈에 목매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려보자. 부자들도 가난뱅이만큼이나 우울하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재산이나 권력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잘라 말한다. 재산이나 권력은 언제까지나 ‘내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게서 떠나버릴 수 있다. 그래서 돈과 권력은 많이 움켜질수록 더 불안하다. 잃을 것도 많아지는 까닭이다. 부자들은 한두 푼에 목숨 걸고, 높은 자리는 추락의 공포를 더 북돋는다. 스크루지의 불행은 자본주의의 환상을 깨치는 ‘백신(vaccine)’이 아닐까?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쳤다. 먹고 살기 힘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거리와 음식만이 아니다. 이들에게 정말 주어야 할 것은 자기 삶의 가치와 의미다. 마음의 풍요로움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는 욕구에 자신을 쉽게 내맡겨 버린다. 마약과 술은 헛헛한 마음을 쉽게 채워준다. 그러나 그만큼 빨리 삶을 수렁에 빠뜨린다. 돈과 권력을 좇는 삶은 술만 찾는 노숙자의 생활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원하는 물건을 손을 넣고서도 얼마나 빨리 싫증이 나는지 떠올려 보라. 반면, 명상과 독서로 영혼을 가꾼 이들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 행복이 재산 순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요즘 광고 시장은 대부업체들의 홍보로 넘쳐 나고 있다. 돈은 욕망을 부르며, 커진 욕심은 또다시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어서 돈을 빌려가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어두운 뒷모습을 본다. 위기에 처한 인문학이 돈이 위력을 떨치는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을까? 한 대부업체의 ‘무이자 송(song)’이 구슬프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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