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법정]<1>자연법을 근거로 재판을 할 수 있을까?

  • 입력 2007년 5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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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힌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해 온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하여 저격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김재규는 곧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기소되었는데, 재판과정에서 “나는 부패한 독재자 박정희에 대하여 국민으로서의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무죄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이 재판에서는 자연법상의 권리인 ‘저항권’을 재판의 근거로 할 수 있는지가 하나의 쟁점이 되었습니다.

[1] 키워드 및 배경지식

재판이란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판의 근거인 ‘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국회에서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제정한 법만이 재판의 근거가 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자연법’입니다. 자연법이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논란이 되어 왔던 개념인데, 그 기본이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당연히 법으로서 지켜져야 할 사회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법은 국가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법으로 제정되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법으로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법의 내용으로 흔히 논의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국민이 잘못된 국가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인 ‘저항권’입니다. 만약 국민의 어떤 행위가 저항권의 행사로 인정된다면, 비록 그것이 살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므로 범죄가 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2] 대법원 판결(대법원 1980.5.20. 선고)

대법원은 위 사건에서 저항권을 재판의 근거로 할 수 없다고 하여 김재규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항권이 국가에 의하여 법으로 제정되어 실정법이 된다면 재판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지만, 실정법으로 제정되지 않은 채 오로지 이론적으로만 자연법적 내용으로 인정되는 것이라면 재판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만 대법원의 일부 판사는 실정법에 명문화되어 있는지와 관계없이 저항권 등 자연법적 내용도 재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소수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3] 생각 키우기

자연법을 재판의 근거로 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정의’와 ‘법적 안정성’ 간의 충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의와 법적 안정성은 법의 근본적인 이념이면서도 서로 충돌하는 이념입니다.

이때 정의란 글자 그대로 ‘옳은 것’을 의미합니다. 법은 당연히 ‘옳은 것’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옳은 것이라면 그것이 실정법이든 자연법이든 간에 당연히 재판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의 이념 중 또 하나의 축인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법적 안정성이란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사회생활의 안정성을 뜻하는데,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는 자연법이 재판의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 곤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정법은 명확히 법으로 제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무엇이 법인지 알 수 있지만, 자연법은 무엇이 그 내용인지 이론상으로만 논의되기 때문에 불명확할 수 있고, 따라서 자연법에 근거하여 재판을 한다면 재판의 결과가 예측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법적 생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법을 근거로 재판을 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두 이념을 어떻게 조화롭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정의의 요청이 큰 경우인지, 아니면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큰 경우인지를 판단하여 그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4] 더 생각해 봅시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입법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할 때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가? 이 법이 진정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법일 경우 비민주적인 방법을 행사해도 무관한가? (2005학년도 수시 서울대 법대 구술문제)

[5] TIP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개념입니다. 문제에서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부분에서는 민주주의를 인권 자유 평등 등 내용적 가치로, ‘비민주적 방법’이라는 부분에서는 민주주의를 다수결 원리 등 절차적 가치로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내용적 가치와 절차적 가치 가운데 무엇을 더 중요시해야 하는지를 논거와 함께 밝히면 좋은 답이 될 것입니다. 이때 논거로서 자연법의 개념을 소개하고 내용적 가치와 절차적 가치 중 무엇이 더 자연법에 부합되는 것인지를 주장한다면 매우 훌륭한 답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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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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