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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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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가는 1870년경 당대 세도가인 민씨 가문이 지은 뒤 여러 주인이 거쳐 갔다. 집을 지은 직후 고종이 이 집을 사들여 박영효에게 하사해 한때 머물렀고, 그 뒤 한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10년 고(故)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친이 집을 산 뒤에는 4대째 윤씨 일가가 살고 있다. 현재는 윤 전 대통령의 장남인 윤상구 씨 가족이 거주한다.
1920년경 주택개발 사업으로 지었거나 다른 지역 한옥의 원형을 보존해 이전해 온 북촌의 대부분 한옥과 달리 이 고택(古宅)은 14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 왔다.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양반 가옥이자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2002년 사적 제438호로 지정됐다.
고택은 대지 1411평에 건축 당시 민가에서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으로 지어졌다. 각 건물은 전통 한옥 양식과 외국 양식이 섞여 있다. 지붕은 목조 전통 건축으로 이뤄져 전통 한옥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세부장식과 생활가구는 중국식과 서양식을 겸비해 묘한 멋을 풍긴다. 전문가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개보수를 거듭한 결과 전통과 현대의 장점을 고루 갖추게 됐다고 평가한다.
1937년에는 정원의 비정형 모양 연못을 정형으로 개조하고 정원석을 제거해 동양식 정원을 영국식 정원으로 바꿨다. 1944년에는 사랑방 한 칸에 입식 식당을 만들고, 1961년에는 툇마루를 없애는 대신 방을 넓히는 등 내부 구조를 꾸준히 고쳐 왔다.
순조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바깥사랑채의 현판인 ‘남청헌’, 김옥균이 쓴 ‘진충보국’ 등 현판도 눈길을 잡는다.
윤보선가는 또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젊은 시절 자주 드나들어 ‘한국 야당의 회의실’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양 김 씨를 이곳에 불러 후보 단일화를 당부했다고 한다.
문화재 전문가와 애호가들은 2000년부터 윤보선가 주변에 상업 건물이 들어서자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며 윤보선가 살리기 운동을 벌여 오고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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