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창경원서 서울대공원 이사온 동물들 지금은…

  • 입력 2006년 11월 1일 03시 03분


나도 왕년엔… 서울대공원 최고령 동물인 쉰다섯 살 코끼리 ‘자이언트’(오른쪽). 지금은 건초 더미를 씹는 일조차 힘에 겨울 정도지만 젊은 시절의 자이언트는 봄놀이 나온 서울 시민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동물원의 마스코트였다. 왼쪽은 1971년 3월 관람객이 주는 비스킷을 향해 긴 코를 내미는 스무 살 자이언트의 모습. 강병기  기자
나도 왕년엔… 서울대공원 최고령 동물인 쉰다섯 살 코끼리 ‘자이언트’(오른쪽). 지금은 건초 더미를 씹는 일조차 힘에 겨울 정도지만 젊은 시절의 자이언트는 봄놀이 나온 서울 시민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동물원의 마스코트였다. 왼쪽은 1971년 3월 관람객이 주는 비스킷을 향해 긴 코를 내미는 스무 살 자이언트의 모습. 강병기 기자
만사가 귀찮아… 관람객들이 소리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 흰곰. 일어나 앉을 힘도 없어서다. 최근에도 두 번이나 병으로 쓰러진 이 곰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다. 강병기 기자
만사가 귀찮아… 관람객들이 소리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 흰곰. 일어나 앉을 힘도 없어서다. 최근에도 두 번이나 병으로 쓰러진 이 곰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다. 강병기 기자
아시아코끼리 ‘자이언트’의 식사시간은 길다. 31일 오후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우리. 다른 코끼리들은 한 단 무게가 27kg이나 되는 건초 더미를 순식간에 먹어치웠지만 자이언트는 건초를 조금씩 뜯어 입에 넣었다. 그동안 이빨갈이만 여섯 번. 마지막으로 나온 이빨도 거의 빠지고 닳아 자이언트는 이제 남은 왼쪽 이빨로 천천히 건초를 씹는다. 자이언트의 올해 나이는 쉰다섯 살. 1955년 한국에 수입돼 창경원(현 창경궁)을 거쳐 서울대공원에 살고 있는 동물원 내 최장수 동물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을 넘긴 셈”이라는 게 서울대공원 측의 설명이다.

▽창경원부터 서울대공원까지=서울대공원의 모체는 1909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동물원으로 개원한 창경원이다. 1984년 서울대공원 개원과 함께 창경원 동물들은 모두 대공원 동물원으로 옮겨왔다. 그중 지금껏 생존한 ‘장수’ 동물은 아시아코끼리를 비롯해 13종 36마리.

이는 본보가 서울대공원의 ‘1984∼2006년 야생동물 생존분석’ 자료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서울대공원이 과거 기록을 넘겨받아 1984년부터 작성한 동물관리 대장(동물의 생년월일 등 기록)과 2000년 이후부터 전산화된 동물관리시스템 자료가 근거. 국내 동물원 12곳 중 동물 생존현황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눈길을 끄는 점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동물이 오래 산다는 것. 아시아코끼리(55년생)나 롤런드고릴라(41년생) 등 초식동물이 시베리아호랑이(26년생), 스라소니(17년생) 등 육식동물에 비해 수명이 길다. 또 서울대공원 개원 이래 지금까지 살아 있는 야생동물 44마리 가운데 27마리가 암컷이어서 인간처럼 동물세계에서도 여성의 수명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자료를 분석한 서울대공원 김보숙 동물운영팀장은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기초 자료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동물별 번식과 라이프스타일 등을 파악해 과학적인 사육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 끊긴 흰곰,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물범=동물원 내 최고령자인 ‘자이언트’는 노령에도 장난기가 여전하다. 큰 소리를 지르는 관람객이 있으면 딴청을 피우는 사이에 돌을 던지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

하지만 자이언트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한다. 몇 년 전 암컷 코끼리와 합방을 시도했지만 스무 살 연하의 수컷 코끼리가 끼어들자 밀리고 말았다.

창경원에서 건너온 잔점박이물범(26년생·천연기념물 331호)도 눈병과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물범이 민물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병을 얻게 된 것. 바닷물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없어 물범의 피부가 나빠지면 잠시 해수탕에 넣어 주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고 사육사는 털어놓았다.

서울대공원 개장 때 수입된 북극곰은 물속에서 얼음을 깨 먹는 등의 재롱을 잘 부려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동물. 그러나 늙은 흰곰 부부는 요즘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31일 오후에도 사육사가 손짓을 하자 수놈은 ‘반갑다’는 표시로 힘없이 일어나 고개를 돌렸지만 다리를 다친 암놈은 눈만 잠시 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늙은 흰곰 부부는 새끼를 낳지 못했다. 서울대공원은 북한 동물원의 흰곰을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해 왔지만 최근 북한 핵실험의 여파로 이마저 중단됐다.

최재덕 사육사는 “북극곰은 이제 구하기가 어려워 전 세계 동물원마다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며 “흰곰들이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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