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값싼 교육’의 함정

  • 입력 2006년 6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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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교 시설은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냉난방시설만 해도 그렇다. 서울 시내 초중고교에서 냉방시설이 설치된 교실은 43%에 불과하다. 에어컨을 갖춘 학교들도 전기료가 무서워 마음대로 틀지 못한다. 이맘때쯤 여름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선풍기 몇 대로 힘들게 더위와 싸워야 한다.

에어컨 없이도 살았던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학교와 비교되는 학원들은 빠짐없이 에어컨을 갖추고 있다. 버스와 지하철까지도 이젠 냉방시설이 되어 있다. 학교 밖의 환경은 크게 달라졌는데 학교는 요지부동인 것이다. 양쪽을 오가며 겪는 학생들의 괴로움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겨울이 되면 학생들은 추위와 또 한번 싸워야 한다.

최악의 학교급식 사고가 발생한 뒤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 직영의 급식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 또한 위생 면에서 문제가 없지 않다. 급식과 관련된 일에서 학교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비록 사고를 내긴 했지만 급식업체들이 프로인 것이다. 덜컥 학교로 넘겨 버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불안하기는 학교 직영 쪽도 마찬가지다.

학교급식에서 자꾸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은 낮은 단가 때문일 수도 있다. 한 끼에 2500원 정도에 제공되는 급식 가격에는 재료비 외에 인건비와 관리비가 포함되어 있다. 급식업체들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이익을 남길 방법을 찾게 마련이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재료를 쓴다든지 해서 위생 면에서 허점이 생길 우려가 커진다.

솔직히 말해 보자. 위생 문제를 떠나 요즘 이 가격에 학생들이 만족할 만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지. 그래도 이 가격은 바꾸기 어렵다. 액수를 올리자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고 학교 측은 편한 길을 택하게 된다. 일을 잘하기보다는 말이 안 나오는 쪽이 나은 것이다.

이처럼 ‘값싼 교육’은 바로 우리 공교육의 수준이기도 하다. 학교에 가면 더위에 시달리는 반면 학원들이 잘 가르치는 강사에다 쾌적한 환경까지 갖추고 있다면 학생들은 학교에선 낮잠 자고 학원에 가서 공부할 수밖에 없다.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되는 저소득층 학생들만 불쌍할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교육비에 인색한 나라는 결코 아니다. 200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교육지표를 보면 한국의 연간 공교육비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7.1%를 차지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사교육비까지 합하면 교육비 지출은 다른 나라들이 따라올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다.

문제는 비효율성이다. 교육비가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흘러 버리는 것이다. 학교에선 에어컨도 못 틀어 주고 미심쩍은 점심을 먹이지만 사교육에는 뭉칫돈을 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교육재정을 GDP 대비 6%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재는 GDP 대비 4.2%에 머물고 있다. ‘약속 위반’이긴 하지만 나라살림이 전체적으로 힘든 마당에 교육재정만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미안한 생각이 있다면 정부는 교육비 지출이 좀 더 효율적인 구조로 바뀌도록 지금부터라도 씨앗을 뿌려 나가야 옳다.

그러나 교육정책은 ‘값싼 교육’을 더 고착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평준화의 틀을 강화하면서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획일주의가 효율성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는 사실은 2008학년도 입시제도가 예고되면서 사교육비가 더 늘어난 모순에서 잘 드러난다. 역대 교육정책이 매번 실패했던 것도 규제 만능주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정부는 고집스럽게 눈앞의 코드에 매달려 있다. 길을 못 보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안 보려는 건가. 그 맨 앞에 비전문가 출신의 교육부총리가 용감하게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참으로 답답한 ‘아마추어 정부’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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