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한병선]‘닫힌 교권’ 열려야 교육이 산다

  • 입력 2006년 6월 2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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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학부모 앞에 무릎을 꿇은 교사’ 등의 문제로 교사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교권이 죽으면 교육도 죽는다며 여론이 교권 확립에 발 벗고 나서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교사의 교권이 상당히 강화될 것으로 전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교권을 세워야 한다며 흥분만 할 뿐 이성적으로 좀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논의해 보자는 노력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여기에는 분명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교사의 교권이 중요한 만큼 학부모나 학생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이 각종 교육활동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의 요구와 영향력이 교육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교사들이 인식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변화는 당연한 것이며 바람직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교사, 학부모, 학생의 관계는 균형 잡힌 삼각형이 아닌 지나치게 찌그러진 형태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사와 수평적인 소통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속앓이를 해야 하는 학부모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교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말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학부모의 권리나 학생의 인격권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지금의 교권 문제인 것이다. 세 주체가 균형 잡힌 삼각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더 근원적인 문제다.

사실 교권 문제의 원인에는 교사들의 가부장적인 교권관이 한몫을 하고 있다. 교사들은 교권을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교육이 과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는 유교적 덕목과 깊은 관련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교사로 하여금 학부모의 쓴소리나 비판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가부장적인 교권관은 또 소통 관계를 수직적 관계로 만든다. 교육현장에서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가령 학부모 상담이 필요할 때 교사들은 흔히 학부모를 ‘소환(召喚)’한다고 표현한다. 학부모를 교육적 협력을 위한 파트너가 아닌 소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제 관계라고 하는 수직적 관계 속에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지시와 통제도 대표적인 예다.

지금 학부모와 교사 간에는 상당한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교사들은 교육을 교사들만의 독점적 활동으로 인식하는 반면,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동 활동으로 본다는 점이다.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서로 다른 인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마치 고부(姑婦) 간과도 같은 불편한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공동선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바람직한 교육활동을 하기 어렵다. 즉, 고전적인 교권관으로는 이미 많이 바뀌어 버린 교육환경 속에서 바람직한 교사-학부모 관계, 사제 관계를 정립해 가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교사들은 교권에 대한 인식을 분명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소통하는 교육과 미래지향적 교육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다. 그것은 바로 열린 교권관이다. 과거 ‘군사부일체’식의 폐쇄적인 교권관에서 벗어나 학부모들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열린 교권관을 가져야 한다.

또 교권은 ‘학부모들에 의해 위임된 제한적인 권리’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학부모는 이런 시각에서 교권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인식이 교육현장에 전달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교사의 권위나 교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 높은 교육을 지향해 갈 수 있다. 나아가 교사와 학부모 간의 의사소통의 폭을 확대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교육은 결국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다자간 협력’의 산물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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