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땐 꼴찌였어요”…서울대 총학생회장 된 황라열씨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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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제49대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황라열 씨가 무아이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제49대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황라열 씨가 무아이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디 밴드, 레코드 회사 대표, 게임업체 대표, 치어리더 매니저….’

12일 제49대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황라열(30·종교학과 4학년) 씨의 이력 가운데 일부다. 그는 갖가지 부업까지 합치면 50여 가지 일을 해 봤다.

1999, 2003, 2004년에 이어 4번째로 비운동권 출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된 황 씨는 출마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그는 서울 대원외국어고를 꼴찌로 졸업한 뒤 고3때 흠뻑 빠진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한동대 산업디자인과에 다니다 1998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군 복무 중 지병을 앓고 계시던 어머니의 소원대로 1999년 고려대 의예과에 특차로 입학한 뒤 자퇴했으며 2000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합격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에야 서울대를 다닐 수 있었던 그는 잦은 휴학을 하며 갖가지 활동을 했다.

비운동권 4번째 당선

황 씨는 ‘놀(NOL)’이란 인디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앨범을 2장이나 냈다. 놀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약자. 그는 이 밴드에서 작사 작곡 편곡에다 연주 프로듀싱까지 도맡았다.

목사인 아버지에게서 일찌감치 독립한 그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다양한 사회 경험을 했다. 합기도 사범, 무아이타이 프로선수, 나이트클럽 DJ, 공사장 인부, 군고구마 배추 장수, 동대문 옷가게 지게꾼, 듀스와 노이즈의 백댄서 등 50여 가지 부업을 했다.

“학비를 직접 벌면서 공부하려고 이것저것 일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전혀 다른 세계를 알게 되면서 치열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러한 경력의 황 씨는 같은 과 송동길(27·99학번) 씨와 함께 운동권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은 ‘반(反)권’ 선거운동본부인 ‘서프라이즈’ 후보로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45.7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한총련에서 탈퇴할 것”

그의 당선 소감은 “지지를 호소하기보다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는 것이다.

황 씨는 지난해 11월 본선에서 1위를 했지만 2위와 표차가 적어 결선투표에 돌입한 뒤 투표율이 50%의 벽을 넘지 못해 재선거까지 치렀다. 이 재선거에서도 학생들의 무관심 때문에 투표 기간을 3일이나 연장해 가까스로 투표율이 50%를 넘었다.

그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황 씨는 “학생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단체에 자동으로 가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면서 “이번 총학은 한총련에서 탈퇴할 뿐만 아니라 회비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황 씨는 “기존 비운동권 총학생회도 학생들과 대화하고 소통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을 이끌어 나가려고 했다는 측면에서 기존 총학생회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수렴기구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학생들을 끌고 나가기보다 낮은 자세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담아내는 총학생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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