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大이건희회장 名博수여식 파행 일파만파

  • 입력 2005년 5월 3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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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고려대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이 극소수 학생들의 집단행동 때문에 파행으로 치러진 데 대해 각계에서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려대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는 “극소수 학생의 지각없는 행동”이라며 비난하는 글이 수없이 오르고 있고 논쟁 또한 뜨겁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주요 처장을 맡고 있는 교수들이 보직 사퇴하고 총장이 공식 사과문을 내는 등 파장도 만만찮다.》

안문석(安文錫) 교무부총장과 9명의 처장은 사태가 벌어진 2일 저녁과 3일 오전 긴급 처장단회의를 열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모두 보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이두희(李斗熙) 대외협력처장은 “학생들도 생각을 표현할 자유는 있지만 신체적 위협까지 가하는 위험한 행동을 하면 곤란하다”면서 “행사를 잘 진행할 의무가 있는데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어윤대(魚允大) 총장은 3일 사과문을 통해 “학생 신분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은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어 총장은 “학위를 안 받겠다는 분을 우리가 억지로 모셨던 것이어서 더욱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 측은 특별한 입장 발표는 자제한 채 어 총장이 공식적으로 전달한 사과문을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陳정통-청와대 경제수석도 유감표명▼

▽동문, 재학생 반응=고려대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등에서는 이번 사태 직후부터 재학생과 졸업생 등의 비난 및 우려의 글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너무했다”, “주장을 밝히는 것은 좋지만 물리적인 행동은 심했다”는 등 비판적인 내용이 많았다.

한 재학생은 “박사 학위 수여의 권한은 학교에 있는 것”이라며 “60여 명에 불과한 소수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구호나 피켓으로 보여 주는 것 이상의 방법을 사용한 것은 치졸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한 졸업생은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국외에서 국빈 이상의 대접을 받는데 유일하게 비난을 받는 곳이 우리나라 대학가”라며 “그곳이 고려대였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 제기는 있을 수 있는 일인데 학교 측이 과잉 반응해 일을 그르쳤다”며 시위 학생들을 옹호하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이날 고려대 총학생회 인터넷 홈페이지는 오후 한때를 제외하곤 내내 접속이 안 됐다. 재학생 및 졸업생들의 접속 폭주 때문인지, 학생회 측이 자체 폐쇄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날 오후 성명을 발표하고 “예정에 없던 돌출행동으로 절제되지 않은 물리적 마찰을 빚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과대 또는 철학과 교수들의 합의도 거치지 않은 철학박사 학위 수여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도 나타냈다.

고려대 동문회인 교우회에도 이날 오전부터 졸업생들의 우려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교우회 관계자는 “졸업생들은 이번 사태로 학교와 삼성 양측 모두가 상처를 입은 데 대해 걱정이 많다”며 “학교와 학생들에게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위기를 해결해 나가길 주문했다”고 전했다.

▽각계 반응=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 혁신토론회에 앞서 기자들에게 “이 회장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것도 있는데 그렇게 예우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또 학생들이 ‘노동운동 탄압’을 학위수여 반대 명분으로 내건 것과 관련해 “노조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학생들이)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영주(金榮柱) 대통령경제정책수석비서관도 “기업가 정신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이번 반대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상에선 누리꾼(네티즌)들의 격론이 뜨거웠다.

‘반운동’이라는 ID의 한 누리꾼은 “이번 사태는 개념 없는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행동으로 전체 학생을 대변한 행동이 결코 아니었다”며 “학생회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학생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학교 측은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을 징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니이체’라는 ID의 누리꾼은 “돈을 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면 ‘대학의 지성’이라는 마지노선은 무너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려대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조금 과격하긴 했지만 약간의 무례를 범한다 해도 잘못된 것을 묵인하지 않는 것이 훨씬 학생답다”고 주장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시위주도 ‘다함께 고대모임’▼

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앞 시위는 ‘다함께 고대모임’이라는 단체가 주도했다.

물론 총학생회 측도 이날 시위에 참여는 했다. 그러나 총학생회와 ‘다함께’ 단체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총학생회 측은 “이건희 회장에 대한 학위 수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집회를 연 것이며 이들로부터 동참을 제안 받아 공감해서 참여했다”고 밝혔다.

‘다함께’는 반전·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을 표방하는 대학생 중심의 연합단체다. 민중민주(PD) 노선의 학생운동 조직인 ‘학생연대’ 계열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함께’ 측은 2일 홈페이지를 통해 “노동자 탄압과 재산세습을 자행하고 있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박사 학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시위 핵심 참가자들은 ‘다함께’의 고려대 회원들과 몇몇 타 학교 학생들로 알려졌다. 해고 노동자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도 있었다. 기자가 직접 헤아려 본 결과 취재기자와 구경꾼을 제외하면 이날 시위 참여자는 모두 63∼65명이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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