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민감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역시 일기장 검사다. 의무적으로 일기를 쓰게 하고 틈틈이 이를 검사해 교사의 평가와 감상을 적어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래선지 일기의 내용이 진솔한 일상이 아니라 지어낸 선행(善行)에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제출용과 보관용을 각기 달리 작성해 제출하는 깜찍한 아이도 있다. 일기를 이성 친구와 바꿔 보거나 교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통로로 사용하는 조숙한 청소년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교에서 학생의 일기장을 검사하는 관행이 어린이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개선해 달라는 의견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전하기로 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시상을 목적으로 한 학생들의 일기장 검사행위’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지 여부를 질의한 것을 계기로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국가인권위가 이런 일까지 이래라저래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일기는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 함양에도 보탬이 된다. 위대한 문학이 작가의 어린 시절 일기장에서 비롯됐고, 철학자의 고백록은 그의 내면 일기가 아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의 신뢰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 가운데는 집안의 대소사를 놀라울 만큼 솔직하게 기록해 오히려 일선 교사와 부모를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업무 연장선에서 왕왕 술에 취해 귀가하는 어느 전문직 여성은 그로 인해 딸의 담임교사에게 불려가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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