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高, 학부모 돈받고 시험지 유출-답안 바꿔치기 표창장 장사

  • 입력 2005년 2월 24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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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문일고에서 2001∼2002년 당시 교장, 교감을 포함한 교사와 학부모가 금품을 주고받으며 조직적으로 내신 성적을 조작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문일고 재직 당시 학부모들에게서 수차례 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해준 혐의(업무방해 등)로 24일 이 학교 전 교무부장 김모 씨(48·무직) 등 2명을 구속하고 교감 김모 씨(59) 등 교사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금품을 주고 성적조작을 부탁한 학부모회 간부 구모 씨(45·여) 등 3명과 유출된 시험지를 전달한 과외교사 천모 씨(26·대학생)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미국으로 달아난 전 교장 김모 씨(55)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교사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경찰은 2002년 이들의 부정 사실을 확인하고도 서울시교육청 감사과나 수사기관에 통보하지 않고 학교장 자체 징계에 맡긴 장학사 김모 씨(44)와 학부모에게 갈비세트 등을 받은 교사 3명에 대해서는 서울시교육청에 통보해 자체 징계토록 했다고 밝혔다.

▽교장이 ‘내신 관리’ 지시, 교감은 ‘표창장 판매’=경찰에 따르면 김 전 교장은 2001년 5월 교장실에서 구 씨로부터 “아들(K 군)의 성적관리를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차례에 걸쳐 141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그 후 당시 교무부장 김 씨 등에게 K 군의 성적조작을 넌지시 지시했다.

이에 김 씨와 교사 정모 씨(42)는 그해 7월 기말고사 때 K 군을 따로 불러내 감독교사 서명을 위조한 빈 OMR답안지에 수학시험 정답을 적게 해 답안지를 바꿔치기했다.

이들은 이듬해 7월과 10월에도 3차례에 걸쳐 영어와 문학시험의 답안을 K 군에게 건네 시험을 치르게 했다.

또 교감 김 씨, 고모 씨(61)와 당시 교감을 지낸 박모 씨(61)는 2001년 7월 중순경 학부모회 간부 구 씨에게서 현금과 의류 등 285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K 군이 표창장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K 군은 이들이 주선해 준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효행상, 서울특별시의회 모범상, 성균관장 효행상 등 7개의 표창장을 받고 졸업했다.

▽과외교사 통해 시험지 전달=전 교무부장 김 씨는 또 학부모 3명에게 505만 원을 받고 보관 중이던 시험지와 답안지를 복사해 자신이 소개한 과외교사 천 씨를 통해 학생들에게 유출했다.

천 씨는 영어, 사회과목 시험지와 답안지를 당시 2학년이던 A 군 등 3명에게 건넸으며 A 군은 이를 또다시 친구 2명에게 전달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에 의해 내신 성적을 ‘관리’받은 학생 중 1명은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에 합격했으며 다른 학생들도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전지원 기자 podragon@donga.com

▼“일부 학부모-교사 부적절 관계” 충격▼

문일고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일부 학부모의 경우 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에 입건된 문일고 학부모들은 경찰에서 “내신 성적만으로 대학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금품 등 교사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학부모 단체는 교사 뒷바라지하는 단체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학부모회를 없애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진술이 많았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청탁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명절 등에는 꼬박꼬박 ‘인사’를 해야 한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같은 행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 데다 사립학교의 경우 마땅한 처벌도 쉽지 않은 실정.

실제 문일고의 경우 시험지 유출, 답안 조작, 표창장 주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학생의 내신을 관리했으나 이를 의심한 한 교사가 가짜 답안지를 교무부장에게 제출하는 방법으로 부정행위를 적발하고 나서야 외부에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립학교 교사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금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며 “현재 사립고의 성적관리 주체가 학교장으로 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전지원 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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