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노약자석에만 앉으라고?"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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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는 열차 1량마다 노인과 연약한 어린이, 병약한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12석의 ‘노약자석’이 있다.

노약자석은 지난 84년 서울지하철 3·4호선이 완전 개통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서울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이 자리만큼은 노약자에게 양보하고 젊은이들은 앉지 말라는 의미에서 생겼으며, 20년이 지난 지금은 좌석이 비어있어도 젊은이들이 앉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노약자석 때문에 오히려 노인들이 일반석을 양보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신은숙씨는 21일 동아닷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요즘은 7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지하철에서 힘들게 서서가도 처녀, 총각, 아줌마, 아저씨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며 “아마도 ‘당신들의 자리인 저어기~ 노약자석으로 가세요’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신씨는 “이제 지하철은 노약자석과 비(非)노약자석이 명확하게 구분돼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자리(일반석)를 굳게 지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며 “노약자석 때문에 오히려 서서가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갑자기 노약자석은 왜?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은 어르신이 서서가면 그냥 못 본체하거나 시선을 돌려 미안함을 표시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분들을 당신들의 자리, 저 구석진 곳에 가서 자리가 나거든 앉고 그렇지 않으면 내 알바 아니란 식으로 해도 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분들 때문에 나라가 발전하고 풍족하게 먹고 살수 있게 됐는데...”라며 “마음 속으로 ‘노약자석만 어르신들의 자리가 아니라, 이 지하철 전부가 당신들의 자리입니다’라고 외쳐보지만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어르신... 다음부터는 자녀들에게 자가용으로 모셔달라고 하세요 라고 되뇌지만, 주변에 서 계시던 어르신네들은 이미 체념한 듯 그저 무표정하게 바깥을 보고 계셨다. 이런 일을 많이도 겪으셨나보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은 2001년기준 65세이상의 인구비율이 7.3%로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19년에는 14%로 고령사회, 2030년이면 20%이상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정부는 예측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노인인구의 증가비율에 비례해 지하철의 노약자석도 늘려가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다음은 신은숙씨가 동아닷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

늘 늦게 다니다가 오랜만에 오후 5시경에 전철(지하철)을 탔다.

2호선을 탈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4호선을 타니 어르신네들이 참 많이 타고 있었다.

별로 붐비지도 않았는데 경로석(노약자석)이 넘쳐나서 여기저기 서계신 어르신네들이 줄잡이 너덧 명은 보였다.

아마도 60대후반이상은 되신 어르신네들....

그분들이 서계시는데 젊은이들이 앉아서 가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젊은이들은 어르신이 서계시면,--

그냥 못 본체 시선을 멀리 돌리던가 하여

그래도 미안함을 표시하기는 하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쳐다보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경로석이 생기고 난 후로부터 어르신들과 청장년들의 자리는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하였으며 어르신들이 중간자리로 와도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마도 '저어기~ 경로석으로 가세요. 그곳에 어르신네들 자리 있으니까요?'라는 생각들인 모양이다.

지금은 잘 없지만 어쩌다 이런 풍경도 목격된다.

젊은이들이 경로석에 있으면 할아버지가 고함을 지르면서 나무라는 소리를....

거의 자격이 없는 젊은이들이겠지만 가끔은 약하고 병들어 힘든 사람도 있을 텐데 물어보지도 않고 호통을 치는 어르신들도 있다.

그러는 반사작용인지는 몰라도 이제 전철에서 경로석과 비경로석은 명확하게 구분되어져 버렸고 이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자리들을 굳게 지키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오늘도 보니 처녀들도, 총각들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그냥 그대로 앉아서 70대이상이 되신 어르신네들이 힘들게 서 가는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갑자기 경로석은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만든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로석 때문에 오히려 서서 가야만 하는 어르신네들....

경로석 제도의 좋은 취지는 퇴색되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어른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다 어디 가고 어르신네들이 서서 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속으로 어르신....

다음부터는 자녀들에게 자가용으로 모셔달라고 하세요? 라고 되뇌지만 주변에 서 계시던 대여섯 분의 연로하신 어르신네들은 이미 체념한 듯 그저 무표정하게 바깥을 보고 계셨다.

이런 일을 많이도 겪으셨나보다.

그분들은 체념하셨지만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분들 때문에 이렇게 나라가 발전하고 풍족하게 먹고 살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분들을 내 부모가 아니라고 당신들의 자리, 저 구석진 곳에 가셔서 자리가 나거든 앉고 그렇지 않으면 서가시던지 내 알바 아니오? 라고 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해본다.

속으로 경로석만이 어르신네들의 자리가 아니라, 이 전철 전부가 당신들의 자리입니다. 라고 외쳐보지만 아무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 밤, 서서 가시면서 그저 무표정하게 창을 응시하고 가시던 그 어르신네들이, 그리고 너무나 당당하게 앉아서 가던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함께 오버랩 되어 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뇌게 된다.

어르신!

이 전철 모든 자리는 당신들의 자리입니다.

당신들이 앉고 남은 자리가 젊은이들의 자리일 뿐입니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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