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인 사면’은 미래를 위한 건가

  • 입력 2004년 11월 30일 18시 21분


여야가 맞붙어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기막히게 이해가 일치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대목이 불법정치자금 또는 개인비리 관련 정치인에 대한 사면복권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의 청와대 만찬 회동 이후 화합의 정치라는 명분을 앞세운 정치인 사면복권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먼저 제기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청와대 쪽도 “3당이 합의해 오면 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불법자금을 받거나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 및 측근이 여야와 청와대에 두루 걸쳐 있으니 운만 떼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정치인 사면복권은 ‘과거를 털고 미래로 가자’는 메시지를 담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 과거는 철저히 청산하고, 어떤 과거는 어물쩍 털고 넘어가자는 것인지 그 기준이 모호하다.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는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 빚은 유산이다. 권력형 비리 또는 불법 정치자금 관련자는 구속될 때만 요란할 뿐 얼마 안 가 풀려나 사면복권을 받음으로써 부패불감증을 조장해 왔다.

법의 심판이 진행 중인 정치인들이 정치권을 향해 구해 달라는 신호를 보내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과거에는 은밀히 정치권으로부터 사면을 약속받고 항소 또는 상고를 포기해 재판을 확정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 전 서울고법은 전직 대통령 아들, 전직 의원과 장관이 줄줄이 은전(恩典)을 받은 1999년 광복절 사면자료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사면권의 남용은 사법권의 독립을 흔들고 법의 권위를 손상시킨다.

여야 담합에 의한 사면은 그 명분으로 내세우는 국민화합을 오히려 해친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 권력자의 죗값이 너무 헐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털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부패를 미래로 연장하는 사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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