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재영]‘수능不正’ 도덕불감증

“이미 학교시험에선 빈번히 일어나는 ‘커닝’이 수능이라고 뭐 대수냐.”(ID 좋은세상)

“(학생들의 부정행위는) 고교 서열화, 대입이 목적인 교육제도 탓이다.”(ID 학벌없는세상)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사건의 진원지인 광주시교육청 홈페이지를 비롯해 각종 교육관련 사이트에는 연일 수천 건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들에 나타난 뚜렷한 특징은 초기에 다수를 이뤘던 부정행위에 대한 성토와 자성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가담 학생들을 ‘동정’하며 책임을 사회구조 차원으로 돌리는 글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 만한 사람 다 아는 일을 너무 확대한다”(ID jklsf)거나 “재수가 없어 걸렸을 뿐인데 너무 가혹하다”(ID 수능대박), “수능시험 하나로 인생이 뒤바뀌는 교육 현실 때문”(ID 광주아님)이라는 등의 논리가 요 며칠 새 인터넷 게시판을 차지하고 있다.

경찰에 출두한 가담 학생들이 “별 일 있겠느냐”고 태연히 말하는 장면, “커닝이 이렇게 큰 잘못인 줄 몰랐다”는 구속 학생들의 진술서에서도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은 묻어난다.

심지어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자책’보다는 남의 탓이 주를 이룬다.

일부 가담 학생의 학부모들은 언론과의 회견 등에서 “아이들이 그런 유혹을 쉽게 피할 수 있었겠느냐”, “학벌주의 사회에서 한탕주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 나는 교육제도 탓”이라며 편들기도 했다.

“휴대전화를 소지한 학생을 봤지만 장래를 걱정해 퇴실시키지 못했다”는 한 감독관의 말에서도 일그러진 현실에 순응하는 초라한 교사상이 느껴진다.

이렇게 모든 걸 남의 탓으로만 돌리며 뒷짐을 지고 있는 가운데 극에 달한 불신은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 “각 시험실을 폐쇄회로TV로 감시하라”, “‘수파라치’제도를 도입하라”는 등의 제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金晧起) 교수는 “잘못된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선택할지는 당사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남의 탓만 하고 책임을 통감하지 못하는 도덕불감증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재영 사회부 j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