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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10일 2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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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성공의 조건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성공하신 거죠?”
KBS1 어린이 토론 프로그램 ‘저요! 저요!’(수 오후5:20)에서 쏟아진 말들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생 6명이 찬반으로 나뉘어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방청석에는 또래 어린이 80명이 참여해 토론을 듣고 찬반 투표를 한다.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을 둔 김명희씨(서울 길동 초등학교 교사)는 “집과 학교에서 늘 아이들을 상대하는데도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이 깊고 표현력이 좋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어른들을 놀라게 한 아이들의 토론 내용은 이렇다.
▽선행학습, 우리 생각은?=지난달 26일 ‘선행학습 필요한가’ 토론에서는 선행학습의 경제적 효용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영어 20만원, 수학 9만원을 주고 선행학습을 해요. 한 번 빠질 때마다 2만5000원이 날아가요. 아까워요.”
“그건 투자예요. 나중에 좋은 대학 못 나와 실업자가 되면 돈이 더 많이 든다고요.”
학원공부는 초등학생들이 1위로 꼽는 스트레스의 주범. 4월28일 방송에서 학생들은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털어놓았다.
“베개를 이빨로 물어뜯다 이가 나갔어요.”
“인터넷 저주 카페에서 밀짚 인형을 사서 싫어하는 친구를 생각하며 태웠어요.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그 아이가 정말 아픈 거 있죠. 하도 무서워 교회도 못 갔다니까요.”
▽외모는 성공의 조건인가?=‘외모는 성공의 조건인가?’(1월7일 방송)에 대한 방청석의 투표 결과는 38대 42로 ‘아니다’는 쪽이 조금 우세했다.
“외모가 성공의 조건이라면 성공한 어른들은 모두 잘 생겨야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을 보더라도….”
전교 학생회장 직선제도 실력보다 외모나 인기라는 변수에 좌우된다는 지적이 나왔다(3월24일). 직선제에 대한 찬반 투표 결과는 찬성 42 반대 38로 팽팽했다. 마치 이미지에 좌우되는 ‘미디어 정치’의 문제점을 아는 듯 했다.
“잘 생기고 인기 있는 사람이 이기기 때문에 선거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선거에선 공약이 중요해요. 저는 교내에 동물 사육장을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부회장이 됐어요. 그런데 선거 1주일 후 친구들이 ‘왜 사육장을 만들지 않느냐’고 해서 엄마한테 얘기해 해결했어요.”
“부모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공약을 내거는 건 문제 아닌가요.”
▽사랑에 대하여=‘초등학생들의 사랑’(4월14일)에 대해 학생들은 “사랑은 감당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아니다, 4학년 때 상처가 약이 된 것 같다”며 찬반 토론을 벌였다. 논쟁이 이어질수록 경험담이 많이 나왔다.
“같이 뛰어 놀면 우정, 느릿느릿 함께 걸으면 사랑이에요.”
“남자 친구 집에 갔는데 동생과 딴 방 쓰는 걸 보고 돈이 있어 보여 좋아졌어요.”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자애가 좋아요.”
이날은 공교롭게 사귀다 헤어진 남녀 아이가 토론자와 방청객으로 나와 신경전을 벌였다.
“남자애가 잘난 척해서 헤어졌어요. 그런데 걔가 다른 여자애랑 사귀는 걸 알고 우울증에 걸렸어요. 그때 또 다른 남자애가 나타나 우울증 치료 겸 사귀고 있어요.”
“여자애들은 진실성이 없어요. 저는 충격을 받아 다시는 사랑을 못할 것 같은데….”
“(사회자) 혹시 사랑과 우정을 혼동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뇨. 우리가 바보인가요? 필(feel)부터 다르잖아요.”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저요! 저요!’ 토론중 아이들의 발언▼
▽“선행학습은 투자예요. 나중에 좋은 대학 못 나와 실업자가 되면 돈이 더 많이 든다고요.”
▽“외모가 성공의 조건이라면 성공한 어른들은 모두 잘 생겨야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을 보더라도….”
▽“같이 뛰어 놀면 우정, 느릿느릿 함께 걸으면 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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