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4월 5일 18시 4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경북 포항시 영일만 호미곶에 해마다 4월이면 나무를 심는 서상은(徐相殷·70·사진) 전 영일군수. 영일(迎日)이라는 지명은 ‘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는 1990년 4월 5일 호미수회(虎尾樹會)라는 모임을 만든 이후 15년째 호미곶을 푸르게 가꾸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25, 26일 회원과 군인, 주민 200여명이 해송 4000그루와 이팝나무 100여 그루를 심었다.
호미곶의 끝 마을인 포항시 남구 대보면 구만리에서 태어난 서씨는 일제강점기 토끼 꼬리로 널리 알려진 호미곶 이름을 되찾기 위해 나무 심기를 시작했다.
“대보초등학교 4학년 때 광복을 맞았어요. 당시 일본인 교사들은 우리나라를 토끼(우사키)라고 불렀고 호미곶은 토끼 꼬리라고 했어요. 조선시대 민화에선 우리나라 모양을 호랑이에 비유하곤 했잖아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호랑이가 토끼로 전락한 것이죠.”
서씨가 호미곶 이름을 되찾고 나무 심기에 나서게 된 계기는 영일(현 포항시에 편입) 군수로 재직하던 1983년 1월 1일 한 라디오 방송사의 전화 인터뷰 때문이었다.
“아나운서가 ‘한반도의 토끼 꼬리인 영일군의 군수님께 새해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고 하더군요.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 꼬리라고 설명하다보니 정작 새해 소감은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호랑이 꼬리(호미곶) 이름 부르기 운동을 한 셈이죠.”
서씨가 회원들과 함께 그동안 심은 나무는 모두 4만여 그루. 호미곶의 바람이 심해 심었던 나무 중 상당수가 말라죽기도 했지만 방풍망을 설치하고 비료를 주면서 살려냈다.
그는 또 호미곶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주부백일장과 학생사생대회 등으로 꾸며지는 ‘영일 호미 예술제’를 국립등대박물관에서 열어 왔다. 올해 10회째인 예술제는 다음 달 2일 5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호랑이에게 꼬리는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호미곶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50년 뒤에는 호미곶이 울창한 숲을 이뤄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과 고기가 몰리는 어부림 역할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믿습니다.”
서씨는 “최근 식물도감에서 찾아낸 ‘호미초(虎尾草)’와 ‘범꼬리꽃’ 동산을 호미곶에 가꾸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