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게이는 다르다?…'게이 마케팅' 주목

  • 입력 2004년 2월 19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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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케이블 채널 '브라보'에서 방영중인 프로그램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의 출연진. 5명의 게이로 구성된 이들 스타일 전문가들은 패션감각이 떨어지는 이성애자 남성을 '변신'시키는 역할로 인기몰이를 하고있다.

미국의 케이블 채널 '브라보'에서 방영중인 프로그램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의 출연진. 5명의 게이로 구성된 이들 스타일 전문가들은 패션감각이 떨어지는 이성애자 남성을 '변신'시키는 역할로 인기몰이를 하고있다.

서울의 한 홍보대행사 사장 A씨는 최근 남자 신입 사원을 뽑으면서 특이한 조건을 내세웠다. 친화력, 적극성, 성실성 등 일반적인 덕목을 갖추었으며 ‘게이일 것’.

왜 그랬을까. 그는 “고급 패션이나 미용 분야의 홍보 대행, 이벤트가 많기 때문에 친절하고 꼼꼼한 게이들이 스트레이트(이성애자)들보다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직원 6명 가운데 3명은 여성, 3명은 게이인 남성들이다. 30대 중반인 A씨 역시 고교시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달았다. 때문에 “커밍아웃(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을 못하고 음지 식물처럼 살아가는 게이들에게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동정심’만으로 직원을 뽑을 수는 없는 일. 업무에서도 남다른 감각이 있기 때문에 게이를 채용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남다른 감각이란?

○주류사회로의 진입

이 회사 남자 직원들은 최근 한 남성복 브랜드 패션쇼에서 주목을 받았다. 옷을 입는 남자와, 남자의 옷을 구입하는 여자에게 모두 어필할 만한 모델들을 적절하게 선정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 초대장 발송에서부터 행사 전반에 걸쳐 섬세하게 준비한 것도 인정받았다.

이들의 능력은 입소문이 났고 경쟁 홍보대행사에서도 ‘소프트한 남성’을 찾는다는 구인 광고를 냈다. A씨에게 ‘남다른’ 인재를 찾아달라는 요청도 있을 정도.

이런 사례는 외국에선 이미 흔하다. 특히 패션 미술 음악 등 문화계에서 게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우선 유명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게이다.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콥스, 에르메스의 장 폴 고티에, 구치의 톰 포드…. 또 스타일리스트, 모델, 패션전문 사진작가 등 이른바 ‘패션 피플’ 가운데 게이의 비율이 90% 이상이라는 추산도 있다.

음악계에서도 마찬가지.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음악가로서 대성하려면 세 부류 중 하나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즉 유대인, 여자, 게이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뉴욕과 파리의 화랑가에서도 “게이 없이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화가는 물론, 화랑 운영자와 그림 수집가들 중 상당수가 동성애자라는 것.

정,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속속 ‘커밍아웃’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미국 드림웍스의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게펜, 포드의 앨런 일모어 부사장, 프랑스의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 독일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 등이 대표적.

○게이의 구매력

지난해 4월 미국 마이애미비치 컨벤션센터에서는 ‘게이 라이프 엑스포’가 열렸다. 세계적 금융그룹 JP모건체이스와 주류 업체인 바카디 등이 협찬했고 자동차, 소비재, 금융 관련 기업 등 90개 회사가 참가했다. 그만큼 동성애자들의 구매력을 평가했다는 뜻이다.

광고 전문 대행사 ‘오퍼스컴 그룹’의 제프리 가버 회장은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로 고심하는 기업들에게 GLBT(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그룹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 마케팅 조사기관 ‘위텍콤스커뮤니케이션’과 조지아대가 2001년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게이 집단은 1인당 연간 3만2300달러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시아계 미국인(2만8700달러)이나 아프리카계(1만9100달러) 스페인계(1만5900달러)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자녀가 없는 대신 애완동물이나 식료품, 여행, 외식 등 자신을 위한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

게이 커뮤니티의 단단한 결속력과 고급 브랜드에 대한 높은 로열티도 소비 집단으로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몫을 한다.

뉴욕에 진출한 패션 업체 ‘오브제’의 부부 디자이너 강진영, 윤한희씨는 “뉴욕 패션계에 들어갈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게이 사회에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없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게이 마케팅

국내 고급 소비재 업계도 서서히 게이 집단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6일 밤 한 외국계 샴페인 업체의 사장과 마케팅팀 직원들은 서울 이태원 일대의 게이바에 시장 조사를 나갔다. 동행한 기자에게 이 업체의 관계자는 “유행에 민감한 게이들에게 입소문이 나면 인기가 더 빨리 확산된다”고 귀띔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한채연 부대표는 “화장품 회사에서 남성용 피부 커버 제품을 개발 중이라며 자문을 구하러 찾아온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케이블채널 ‘브라보’에서 방영 중인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는 미국 사회의 ‘게이 신드롬’을 반영한 드라마다.

제목을 의역하면 ‘게이의 안목으로 이성애자 남성을 변신시킨다’는 뜻. 패션 미용 인테리어 등 고급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일하는 게이 5명이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이성애자 남성들을 멋지게 변화시킨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게이들은 세련된 이미지로, 이성애자는 센스 없는 모습으로 나온다. 이 방송에서 게이들이 제안한 ‘러키 진’ 청바지는 매출이 17% 늘었고 ‘도메인’ 소파는 4배 가까이 더 팔렸다고 최근 포천지는 전했다.

이 밖에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동성애자 여행객 전담팀이 재작년 1억9200만달러를 벌었다. IBM에는 사장이 게이인 업체를 전담하는 마케팅 담당 이사가 2명이나 있다.

현대자동차는 1999년 스웨덴에서 아내와 남자친구를 동시에 둔 한 중년 남성을 묘사한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본격적인 ‘게이 마케팅’이 아직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더 큰 소비집단’을 잃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동성애적 코드를 그대로 드러내는 시각물들. 왼쪽부터, 콤돔 업체 '라이프스타일즈'의 광고, 오슬로 게이 페스티벌 포스터,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의 광고. 사진제공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의 저자 김홍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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