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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16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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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로 창씨개명했다가 일본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받았던 70대 노인들이 한 초등학교 교장의 노력으로 졸업 60년 만에 한글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받는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증약초등학교(교장 김길평·金吉評)는 19일 열리는 졸업식에서 이 학교 1, 2회 졸업생 72명(남자 54명, 여자 18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준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나마 남은 사람도 소재 파악이 안 돼 졸업식에는 10여명만 참석하지만 노인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다.
“1944년 3월 25일 졸업했는데 졸업장에 ‘야마무라 히데오(山村茂雄)’라고 씌어 있는 거야. 기가 찼지만 어쩔 수 없었지. 늦었지만 한글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받게 돼 너무 기분이 좋아. 허허.”
사흘 앞으로 다가온 졸업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1회 졸업생 이창식(李昌植·74·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씨의 소감이다.
이들이 한글 졸업장을 받게 된 데는 김 교장의 공이 컸다. 이 학교 12회 졸업생인 김 교장은 지난해 3월 부임한 뒤 우연히 찾아본 학적부에 1, 2회 졸업생만 일본 이름이 실린 것을 보고 한글 이름을 찾아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학적부에는 일본 이름만 있어 누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생존해 있는 졸업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노인들의 기억력에 의존해 ‘한글이름 퍼즐’을 풀어냈다. 김 교장은 “72명의 졸업장을 만들었는데 생존해 있는 분들이 절반도 안 돼 아쉽다”며 “졸업식 날 모교를 찾는 대선배들을 위해 졸업장과 함께 재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떡국을 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옥천=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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