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씨 대선자금 사과]‘이젠 盧대통령 차례’ 우회압박?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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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오른쪽)와 최병렬 대표가 30일 이 전 총재의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 앞서 당 대표실에서 잠시 만났다. 환담을 나누던 중 동시에 기침을 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는 두 사람의 표정이 어색해 보인다. -연합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오른쪽)와 최병렬 대표가 30일 이 전 총재의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 앞서 당 대표실에서 잠시 만났다. 환담을 나누던 중 동시에 기침을 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는 두 사람의 표정이 어색해 보인다. -연합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가 30일 SK비자금 한나라당 유입 사건에 대해 전격적으로 대(對)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이재현(李載賢) 전 당 재정국장의 구속과 김영일(金榮馹) 전 사무총장의 소환으로 예상보다 검찰 수사가 급진전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당초 이 전 총재는 검찰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국민사과를 할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시기를 앞당겼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특히 이재현 전 재정국장의 구속을 계기로 당 사무처 직원들간에 격앙된 분위기가 고조된 것도 이 전 총재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 됐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총재는 실제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을 위해 심부름한 죄밖에 없는 재정국장의 구속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을 보고 참담한 심정에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사과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대선자금 책임론의 공을 넘기는 ‘압박 전술’을 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책임부분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노 대통령과 주변의 비리의혹에 대해서도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는 이날 회견문에서 노 대통령 관련 부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노 대통령도 책임질 것은 져야 한다”는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특히 검찰측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이 이 전 총재에 대한 출국금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자칫 대국민 사과의 타이밍을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회견을 앞당긴 배경이 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31일로 예정된 부친 이홍규(李弘圭)옹의 1주기 추도행사에 앞서 SK비자금문제를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추도행사와 선영 참배에 나서고 싶다는 본인의 개인적 희망도 작용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전 총재의 이날 회견에 대해 당내에서는 “이 전 총재가 분명한 입장정리를 해줌으로써 이제 당이 제대로 대여투쟁을 할 수 있게 됐다”며 대여투쟁의 전열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그와 관련해 이 전 총재가 검찰의 SK비자금 사건 수사에 정면 대응 의사를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란 평가가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이 전 총재가 검찰 수사에 응해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솔직하게 비자금내용을 밝힐 경우,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이 ‘대선자금 전면공개’의 압력에 부딪혀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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