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2명 체험기]"학벌차별 너무 심해요"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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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정부는 출범 직전인 올해 2월 12대 국정과제 발표에서 “학벌 타파와 학력차별 금지제도 도입 등을 통해 학벌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사회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또 대부분 기업들도 겉으로는 “학벌보다는 능력을 위주로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지방대 출신 취업 준비생들은 기업의 입사 서류전형부터 차별을 당해 취업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지난달 중순경 취업을 준비 중인 연세대 4학년생과 전북대 올해 졸업생을 섭외해 8곳의 대기업 계열사 가을공채에 입사원서를 넣게 하고 결과를 지켜봤다.

취업 체험에 참가한 두 학생은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성모씨(26·내년 2월 졸업예정)와 전북대 경영학과를 올해 8월 졸업한 유모씨(27). 두 사람은 대학만 다를 뿐 전공이 같고 학점 평균(성씨 3.10, 유씨 3.09)과 토익성적(성씨 880, 유씨 890)이 모두 비슷했다.

97학번인 성씨는 1996학년도 수능시험에서 200점 만점에 135점을 받았고, 재수 끝에 1997학년도 수능에서는 400점 만점에 316.5점을 얻어 연세대에 진학했다. 95학번인 유씨는 1995학년도 수능에서 200점 만점에 143점을 받았다.

지난해 연세대 경영학과의 수능 커트라인은 360점 선이었고, 전북대 경영학과는 320점 선이었다. 입학성적에서 다소 차이가 나지만 국립대인 전북대는 지방대학 중에는 명문에 속하는 대학이다.

두 사람 모두 현역 병장으로 제대했으며 성씨가 한자능력3급 자격증이 있는 반면 유씨는 독일어와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자기소개서에는 대학 시절 경력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게 했다.

한달여에 걸쳐 진행된 서류전형 결과 지방대 출신인 유씨는 8개사 모두에서 서류전형 통과에 실패해 면접이나 필기시험 등 본격적으로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반면 연세대 출신의 성씨는 ㈜SK와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기아차 등 3사에서 불합격했으나 삼성아이마켓코리아 삼성증권 LGCNS CJ㈜경영전략부문 두산상사 등 5개 회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아 62.5%의 높은 통과율을 보였다.

이에 대해 8개 회사 인사담당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서류전형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두 사람의 결과가 갈린 것은 우연이거나 자기소개서의 차이 등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그러나 회사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한 질문에서는 “출신 학교, 당연히 본다. 상당히 중요한 고려사항”이라고 털어놓았다.

취업 체험이 끝난 뒤 유씨는 “지방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며 “대기업 취직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9급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취업포털사이트 잡링크가 수도권 547개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채용할 때 출신 대학이 서울인지 지방인지를 구분한 적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64.7%인 354개사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지방대 4학년 재학생 및 졸업한 취업준비생 1854명 가운데 79%인 1465명이 “지방대 출신이어서 구직활동 때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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