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불법체류자 등록]“합법화 좋지만 밤새 줄서야 하나”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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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5시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1동 법무부 의정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천신만고 끝에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서 발급받은 취업확인서를 손에 쥔 수백명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이 건물 밖 임시 접수창구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곳만 통과하면 앞으로 2년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기대로 추위에 떨며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고통을 참으며 다음날 오전 7시 접수번호표를 나눠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은 이날 오전 번호표를 받아 접수창구로 가기 위한 것과 다음날 나눠주는 번호표를 받기 위해 따로 만든 것 등 서너 갈래나 됐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옛 남부지청 건물에 마련된 서울 접수창구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남부지역에서 온 노동자들이 27일 오전 4시부터 몰려 줄은 오후에도 100m 이상 됐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합법적인 신분을 부여하는 시한은 다음달 15일. 그러나 급한 마음에 외국인들은 비를 맞아가며 줄을 섰다. 순번에 들지 못한 이들은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동남아 출신 외국인들은 두툼한 잠바와 담요, 스티로폼, 방석 등으로 나름대로 무장을 했지만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A씨(26·여)는 그래도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언제 단속반이 닥칠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이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하룻밤 새우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교포 B씨(42)는 “한국인들도 관공서에서 밤새 줄 서는 일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멀리서 찾아왔는데 비 맞으며 밤을 새워야 하다니…”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직원이 11명뿐인 의정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임시 및 수습 직원 36명을 추가로 채용하고 건물 지하 2층을 임시로 빌려 접수창구를 마련했지만 몰려드는 외국인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밤낮 없이 이 건물을 감싸는 50여m의 줄이 생겼고 안내직원의 확성기 소리로 주변은 어수선했다. 건물 안에 있는 점포의 종업원은 “남루한 외국인들이 건물을 포위하다시피 해 손님이 뚝 끊겼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합법화 신청을 받는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수도권에 서울(서울 및 경기 남부 관할), 의정부(경기 북부), 인천(인천 광명 안산) 등 세 곳뿐.

올 3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기간 4년 미만인 합법화 대상 22만7000명 가운데 지금까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등록한 외국인은 8만6000명. 나머지 14만여명이 보름 남짓한 기간에 절차를 모두 마치기에는 너무나 촉박하다.

의정부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잠깐 집에 들러 옷만 갈아입고 오전 6시에 출근하는 등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일손이 모자란다”며 “기한 내 등록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밤샘 줄서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관계자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합법화 등록에 큰 불편을 겪어 안타깝다”며 “등록기한을 연장하고 접수창구를 확대하는 등 편의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인천=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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