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영남대 이동순 교수 16년 노작 출간

  • 입력 2003년 10월 9일 2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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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는 부슬부슬 뿌린다/강물은 굼실굼실 흐른다/뭇 귀신이 운다/강 건너에는 희끗희끗 웅크린/백의인(白衣人·흰옷 입은 한국인)이 보인다/두 벌 김이라도 매는가/남정네도 보이고/머리에 흰 수건 쓴/아낙도 보인다/어미 따라 남새밭에 나선/어린 동무/아,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에/가을비가 젖는다…’(서시)

백두산 포수 출신의 항일의병장 홍범도(洪範圖·1868∼1943) 장군이 시(詩)로 부활했다.

영남대 이동순(李東洵·53·국문학) 교수는 9일 홍 장군의 일대기를 서사시로 엮은 ‘민족서사시 홍범도’를 펴냈다. 그는 홍 장군의 치열했던 삶을 16년 동안 함께 하면서 단행본 10권으로 되살렸다.

“꿈에 홍범도 장군을 만난 것도 여러번이었습니다. 장군의 초상화를 벽에 걸어 놓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함경도와 북간도 일대 지도를 펼쳐놓고 장군의 발자취를 마치 독립군 병사처럼 더듬으며 행군하는 심정이었습니다. 홍범도의 삶을 추적할수록 아름답고 감격스러웠습니다.”

평양에서 태어난 홍범도는 일제 침략으로 포수들의 생계가 위협받자 조선 포수의 대표격으로 항일에 나섰다. 후치령전투 봉오동대첩 청산리대첩 등에서 홍범도가 보여준 용맹 때문에 일본군은 ‘홍범도’라는 이름만 듣고도 도망가기 바빴다.

하지만 홍범도의 생애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그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홍범도는 중년쯤 연해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다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뒤 가난과 고독 속에서 74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숨졌다.

“홍 장군에 대한 국내 연구가 빈약한 것은 홍범도가 신분이 낮은 포수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 모든 면에서 열악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절박한 삶을 살았던 홍범도의 일생이 묻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늘 따라다녔지요. 시인이라 시로써 홍범도를 다뤘지만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사명감이 힘이었습니다.”

시인은 홍범도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적벽가’ ‘심청가’ 같은 판소리 사설을 반복해서 읽으며 민족정서를 시에 녹였다. 홍 장군이 전투하는 장면을 쓰느라 컴퓨터 자판을 두들길 때는 백마를 탄 홍범도가 눈보라를 뚫고 질주하는 말굽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문학평론)에 당선된 이 교수는 ‘개밥풀’ 등 많은 시집을 펴냈으며, 11일 오후 5시 영남대 국제관에서 시인 고은(高銀) 소설가 송우혜(宋友惠)씨 등의 축하 속에 출간 기념회를 마련한다.

경산=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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