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거했어도 법적 혼인이 우선” 60대 할머니 패소

  • 입력 2003년 9월 24일 23시 11분


40년간 동거하며 부부로 살았더라도 동거남에게 이미 혼인신고를 한 다른 여자가 있다면 동거를 지속한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2부(김이수·金二洙 부장판사)는 24일 A씨(65·여)가 “40년 가까이 동거했다면 사실혼 관계로 봐야 한다”며 남편 B씨(80)를 상대로 낸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거생활을 할 때 당사자 중 한 사람이라도 혼인할 의사가 없으면 실제로 부부처럼 생활했다 해도 사실혼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B씨도 혼인할 것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씨의 사실혼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B씨가 1971년 다른 여성과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관계를 부정하는 결과가 나와 법률혼을 사실혼보다 우선시하는 판례를 깨야 한다”며 “A씨의 딱한 사정은 알지만 법적으로 달리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1965년 B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해 B씨 본가를 오가며 시부모를 봉양했고 제사에도 참석했으며 B씨도 A씨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 등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B씨가 71년 다른 여자를 만나 혼인신고를 하고 둘 사이에 아이까지 낳은 사실을 1996년 뒤늦게 안 A씨는 지난해 4월 B씨를 혼인빙자간음으로 검찰에 고소하는 한편 법원에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고소는 공소권이 없다는 검찰의 판단에 따라 불기소 처분됐고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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