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의 대화 안팎]전국서 70명 참석… 비공개회의 격론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37분


18일 대법관 임명 제청을 앞두고 사법부 사상 처음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전국 판사와의 대화’가 열렸으나 사법개혁을 주장해온 문흥수(文興洙) 서울지법 부장판사가 회의 도중 퇴장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70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은 오후 3시에 회의를 시작해 중간 휴식시간 없이 김밥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며 오후 10시30분까지 격론을 벌였다. 7시간30분 동안 이어진 마라톤 회의는 두 차례 박수로 끝을 맺었다.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는 판사들은 대체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평판사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했다”고 말했다. 재경 법원의 부장 판사는 “할말은 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며 여운을 남겼다.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 대신 회의를 주재한 이강국(李康國) 법원행정처장은 회의 시작 전 “격의 없이 이야기하자”며 양복 상의를 벗을 것을 제안해 참석자들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토론을 벌였다. 대법원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녹음이나 속기를 하지 않았다.

참석한 판사들은 돌아가며 5∼10분 동안 의견을 개진한 후 사회자 없이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중간 중간 고성이 회의장 밖으로 새어나오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핵심 쟁점이었던 대법관 제청 후보의 재고 문제에 대해서는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는 등 난상토론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일부 부장판사들은 대법관 제청의 재고를 촉구하며 이 문제에 대해 표결을 요구해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날 회의 초반에 소장파 판사들이 갑자기 소집된 ‘판사와의 대화’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이 처장이 긴급 소집의 불가피성을 설명하자 문 부장판사가 이 처장의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한 후 퇴장해 회의장은 한때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문 부장판사는 “이렇게 갑자기 회의를 하는 것은 법원행정처의 오만방자하고 관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참석자 상당수가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런 회의는 의미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떠났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회의에서 이 처장은 인사말을 통해 “말할 수 없이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이 자리는 설득을 하거나 현 사태를 미봉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며 이번 사태에 이른 경과와 대법원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고 법관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용구(李容九) 판사는 회의 시작 전 배포한 글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서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고 실질적인 의견 수렴도 어렵다”며 “대법관 인사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적정 사법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간에 퇴장한 문 판사와 달리 이 판사는 끝까지 회의장을 지켰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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