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유럽 공원묘지 가보니

  • 입력 2003년 7월 18일 18시 41분


코멘트
10일 오전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콕스키르 공원(일명 우드랜드·Woodland).

발트해의 해풍(海風)이 불어오자 북유럽의 햇살이 투명하게 출렁거렸다. 먼발치로 누군가를 추모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1990년 사망한 스웨덴 출신의 명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비석 앞이었다.

1940년 조성된 이곳은 공원묘지다. 약 30만평 규모에 예배당, 화장시설, 산골(散骨·화장해 뼛가루를 뿌리는 것) 장소와 녹지로 꾸며져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묘지라기보다 시민의 쉼터이자 사유의 공간이다. 드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숲, 멋진 건축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영혼의 자유로운 여행을 상징하듯 지붕 없이 기둥만으로 이뤄진 ‘이별의 공간’은 마치 신전을 연상시킨다. 삶과 죽음, 그리고 신의 섭리를 건축과 자연 속에 압축시켜 놓은 곳. 그래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스톡홀름의 묘지공원인 스콕스키르공원 내부. 햇살과 숲이 어우러진 호젓한 산책로로 연결돼 걷다 보면 저절로 삶과 죽음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스웨덴의 명배우 그레타 가르보도 이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으며(오른쪽 위), 런던시립공원묘지의 정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을 연상시킨다(오른쪽 아래). -이광표기자

산골 장소는 ‘기억의 땅’으로 부른다. 숲길을 걸으면 어디선가 영혼들이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관리소장인 벼리예 울손은 “스톡홀름 시민의 화장률은 약 90%로 그 가운데 절반은 산골한다”면서 “이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는 스웨덴인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일 오후 영국 런던 알더스브루크가(街) 소재 런던시립공원묘지 겸 화장장. 고풍스러운 석조(石造) 정문이 마치 유적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약 4만평 규모인 이곳 역시 화장 및 산골 장소다. 죽은 자들의 명패가 질서정연하게 땅에 박혀 있고 주변은 온통 잔디와 나무, 꽃들이다. 산골 장소의 이름은 ‘사색의 정원’.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분했다. 화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오열해야 하는 한국의 풍습과 달리 이들은 화장하기 전 모두 이별을 고했다. 그들은 분명 죽음에 대해 좀 더 대범했다.

더 이상의 묘지 공간이 없는 서울의 현실. 그래서인지 화장률이 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납골당에 안치하고 산골에 대해선 죄의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죽은 자의 흔적을 매정하게 지워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5월 초 서울시는 경기 파주시 용미리에 3550평 규모의 산골 공간 ‘추모의 숲’을 조성했다. 시는 “산골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산골도 하나의 장법(葬法)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런던시립묘지 사색의 정원 벤치에서 고덕기(高德基) 한국장례업협회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땅이 좁은 우리 현실도 현실이지만 산골은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묘지도 더 이상 괴담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 산 자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죽은 자와의 합일을 꿈꾸는 철학적 문화적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스톡홀름·런던에서>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