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파문’ 마사회 구조조정 大法 “부당해고” 원심 확정

  • 입력 2003년 7월 8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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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부(주심 박재윤·朴在允 대법관)는 8일 마사회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른바 ‘살생부’에 올라 정리해고된 김모씨(49) 등 전직 마사회 직원 13명이 중앙노동위원회와 마사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마사회가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따라 정리해고를 단행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해고회피 노력 및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른 대상자 선정 등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씨 등은 98년 마사회가 감원을 실시하면서 자신들을 면직 처분하자 영업실적 및 징계 여부 등 합리적 기준 없이 정치 성향이나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했다며 2001년 소송을 내 1, 2심에서 승소했다.

행정소송이 해고자들의 승소로 끝남에 따라 해고자들은 9일부터 복직하게 되며 그동안 못 받았던 임금을 전액 돌려받는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황당한 성향분류 다시는 없어야” '살생부' 희생자들 감회▼

“견디기 힘든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8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13명의 마사회 해고자들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이제야 끝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은 소위 ‘마사회 살생부’의 희생자들이었다. 이는 1998년 9월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측이 지역과 출신, 성향을 따져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한 문건.

당시 오영우(吳榮祐) 마사회 회장과 간부진은 구조조정이란 미명 아래 이 살생부를 근거로 1, 2급 직원 28명을 대상자로 선정했으며 명예퇴직 신청자 14명을 제외한 나머지 14명을 강제 해직했다.

강제 해직된 14명은 이후 1998년 11월 경기지방노동청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으나 패소했고 다시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청구를 했으나 기각됐다.

결국 1999년 9월 행정소송(부당해고 재심판정 취소의 소)을 제기, 3심을 거쳐 5년 만에 이날 대법원에서 당시 경영진의 해고가 부당했음을 입증했다.

지난 5년은 이들에게는 가시밭길을 걷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었다.재판 준비를 하느라 달리 생계수단도 찾지 못한 이들은 집을 담보로 잡힌 돈과 주변에서 꾼 돈으로 근근이 소송비용과 생계를 이어나갔다.실직한 가장 대신 생계를 책임진 것은 보험설계사와 카드외판원으로 나선 아내들. 해고자 중의 한 명인 임모씨는 해고의 충격으로 지병이 악화돼 사망했고 임씨의 두 자녀는 1년씩 번갈아 대학을 다니며 휴학기간에 다음 학기의 등록금을 벌기도 했다.

길고 긴 고통의 터널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 것은 부당해고를 입증할 수 있는 ‘마사회 살생부’의 존재를 확인하면서부터.

오 전 회장의 비서를 통해 확인된 이 문건은 본보의 단독보도(2002년 3월 20일자)로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 문건은 직원들을 출신 지역, 정치 성향, 사내 파벌 등으로 구분했으며 심지어 ‘수첩 미소지’ ‘위험한 인물’ ‘DJ 비난’ 등 황당한 평가까지도 적시했다.

본보 보도 직후 마사회 노조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으며 당시 구조조정에 관여했던 직원 및 간부들의 증언을 통해 이 문건이 실제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음을 확인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해고자들에 의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발돼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한 직원이 지난해 8월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장 5층 난간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그러나 오 전 회장, 이은호 당시 비서실 계장 등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본보를 상대로 각각 20억원과 5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또 이 사건과 관련된 형사소송도 급진전을 볼 것으로 보인다.

행정소송과는 별도로 해고자들은 지난해 4월 오 전 회장 등 관련자 11명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해고자 중의 한 명인 김진은(金鎭殷·49)씨는 “부당한 해고였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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