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大亂]부산 몰려간 장관들 '중구난방'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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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집단농성을 벌이며 작업을 거부한 지 6일째인 14일 오전.

부산시청과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어느 때보다 바빴다.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일시에 방문해 부두와 물류 현장을 둘러보았고 이날 오후에는 고건(高建) 국무총리까지 다녀갔기 때문이다. 전날 도착한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합해 4명의 장관은 이날 관계기관을 방문해 대책회의를 가지며 나름대로는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이들의 회의 내용과 발언 등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한마디로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이날 오전 부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열린 장관들과 운송회사, 부두 관리회사들의 대책회의.

한 부두 관리회사 간부가 “지금 회의할 시간도 없다. 이미 나올 만한 조치는 다 나왔고 비조합원들이 복귀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서달라”고 요청하자 허성관(許成寬) 해양부 장관은 버럭 짜증부터 냈다. “정부에 문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지 말라. 각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 때문에 회의장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고 건의했던 간부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허 장관은 또 한 운송업체 간부가 “비상수송 차량이 과적으로 단속에 걸려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하자 “어제 한 얘기 아니냐. 나중에 말하자”며 말문을 막아버리기도 했다. 현지 목소리를 듣겠다며 참석한 3명의 장관은 이날 30여분 동안 불과 4명의 발언을 청취했을 뿐이다. 허 장관은 다른 장관들이 바쁜 일정 때문에 일어서자 “허허…. 붙잡아 놓고 괴롭혀야 하는데… 질문이 없다”며 엉뚱하게 부산지역 참석자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장관들의 겉치레 행보는 다음 방문지인 신선대부두에서도 반복됐다.

부두 관리회사 간부가 “운송업체가 모두 일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제안하자 윤진식(尹鎭植) 산자부 장관은 “거참 좋은 얘기네. 건교(건교부장관)하고 부산시장하고 한번 해보라고”라며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최종찬(崔鍾璨) 건교부 장관은 “권한이 모두 지방에 내려가 있는데…. 건교가 서울에서 무슨. 부산이 해야지…”라며 책임을 부산시장에게 떠넘겼다.

되레 주무부처도 아닌 김두관(金斗官) 행자부 장관은 비행기 출발시간을 연기한 채 직접 운송업체 사장과 통화를 하며 사태 해결에 나서는 자세를 보여 지켜보는 이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권지관(權支官) 부산경찰청장도 문제를 덮는 데 급급했다. 그는 행자부 장관, 경찰청장이 함께한 자리에서 부두 관리회사 간부가 “화물연대측이 비조합원 차량에 돌을 던지는 등 위협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하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어제까지 그런 보고를 받은 바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며 ‘화물연대’측을 변호했다.

이날 방문한 장관들의 행태에 대해 많은 참석자들은 한마디로 “뭐하러 왔노?”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업체 간부는 “장관이 4명이나 와서 한 것이 이 정도니 정부대책이 별 볼일 없을 수밖에 없다”며 “쓴소리는 안 들으려 하고 사태를 책임지려는 사람도 없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라며 한숨지었다.

부산=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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