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이 꺼진 서울 '강남의 밤'

  • 입력 2003년 5월 13일 14시 45분


코멘트
최근 서울 '강남의 밤'에 네온사인이 꺼진 유흥업소들이 속출하고 있다.

강남경찰서가 불법 및 탈법 영업을 벌이고 있는 관내 유흥업소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기 때문. 강도 높은 단속을 통해 불법 탈법 유흥업소들의 공공연한 윤락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것. 이 때문에 경찰의 초강경 단속이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단속 현장

9일 오후 11시. 논현동의 'A 마사지'에 8명의 사복단속원이 들이닥쳤다. '안마시술소' 허가를 받고 '특별 서비스'를 해온 신종 증기탕 업소 가운데 한 곳이다.

손님을 가장한 단속반원 2명이 카운터로 종업원들을 모아 외부 연락을 못하도록 통제하는 사이 다른 대원들은 '윤락'이 진행 되던 방 안으로 들어가 현장을 캠코더로 담고 콘돔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특수'를 누리는 '금요일 밤'인 탓인지 12개의 방이 모두 차 있었고, 단속인 진행되는 중에도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경찰에게 "얼마냐"고 묻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업주와 고객은 결국 윤락행위방지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강남 최대 규모로 3층건물 전체에서 공공연히 윤락영업을 해온 인근 'B안마'가 다음 타킷. 그러나 단속반이 들이닥쳤을 땐 업소의 실내외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주변 동태를 감시해 업소측에 일러주는 이른바 '망발이'와 24시간 가동되는 내부 CCTV를 통해 미리 낌새를 눈치챈 것.

대원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1시간 이상을 기다렸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 대원은 "단속반이 한번 뜨면 소문이 금새 강남 전역으로 퍼지기 때문에 하루 2곳 이상 단속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단속반은 11일 오후 11시에도 다시 제보를 받고 'B안마'로 출동했다. 이번엔 문은 열렸지만 내부에 실내등만 켜진 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사우나실 안에 수증기가 차 있고 1회용 면도기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대피한 흔적이 역력했다.

▲불법영업 실태와 단속 실적

3월경부터 강남경찰서측은 청담동의 T, 신사동의 Y증기탕 등 180개 업체에 대해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의뢰해놓은 상태다. 관내 954개의 단란주점, 룸살롱과 80여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는 휴게텔, 증기탕, 퇴폐이발소, 안마시술소 중 변태영업이나 특수윤락 첩보가 들어온 곳이 주 단속대상이다.

이 중에는 단란주점 허가를 받고 여성 접대부를 두는 업소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같은 변태영업은 그동안 관행상 용인돼 왔으나 이번에 철퇴를 맞게됐다..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고 노래방반주기를 둔 '가라오케'나 자유업으로 신고하고 1년 가량 문을 연 뒤 폐업처리해 '목돈'을 버는 신종 휴게텔들도 집중 단속 대상.

이 때문에 강남 유흥업소 밀집지역에는 '내부수리' 명목으로 문을 닫은 곳이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 일부는 단속반을 피해 '숨바꼭질 영업'을 하고 있다. 5월은 고액경품을 주는 20여개 불법오락실에 대해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들 업소 가운데 15곳이 이미 문을 닫았다.

▲"단속 지나치다" 볼멘소리도

한 룸살롱 경영자(52)는 "동업종 사장들과 함께 집단탄원서를 제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경기침체와 주5일 근무 여파, 거기다 룸살롱 술값에 대한 '접대비 인정' 논란까지 더해져 손님은 계속 줄고 있는데 경찰의 초강경 단속으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회사원 C씨(36)는 "역삼동 오피스타운에는 요즘 '잘못 놀다 망신당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며 "성인의 '즐길 권리'도 있는 만큼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강남경찰서 박용철 방범지도계장은 "업주들이 고위층과의 '끈'을 강조하며 단속완화를 요청하거나, 특정업소만 손보려 한다는 '인터넷 음해'까지 시도하고 있다"며 "더 이상 불법, 탈법영업을 방치한다면 강남의 유흥업소는 현대판 고모라가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