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관 KBS이사장 정연주사장에 항의 편지

  • 입력 2003년 5월 2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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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관(池明觀) KBS 이사장이 1일 정연주(鄭淵珠) KBS 사장에게 충정어린 사신(私信)을 보냈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이 친필 서신에서 지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정 사장이 부사장과 7명의 본부장을 전격 교체한 것을 거론하며 “혁명이 아니라면 이번 인사는 있을 수 없으며 공기관을 매우 사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데 대해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이날 오전 3시경 이 같은 서한을 작성해 정 사장에게 보냈으며 “KBS의 방향이 잘못 나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임기를 15일밖에 남기지 않고 있다고 하여 한마디 항의도 없이 침묵하고 만 데 대한 자책(自責)에 사로잡혀 야반(夜半)에 이 글을 쓰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다음은 편지 내용.》-동아일보 편집자 주

정연주 KBS 사장 귀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펜을 들게 된 것을 심한 슬픔으로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2003년 5월 1일, 아직 날이 새기 전 3시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입니다. 어제 4월 30일 아마 귀하가 KBS에 부임한 지 처음, 그리고 우리로서는 마지막이 될 듯한 이사회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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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부임한 지 3일째가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바로 전 주에 이사회에서는 재적 이사 11명 중 9명 참석으로 4 대 5로 귀하를 사장으로 선출한 바 있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승인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차후 인선 등이 천천히 행해지는가 했더니 귀하는 부사장 본부장 등 많은 사람을 전격 해임 전보하고 이사회에는 새 부사장의 부임만을 승인 신청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4월 30일 이사회는 부사장 승인만이 고유권한이므로 그대로 승인하고 본부장 등의 해임이나 기타 요직의 인사이동에 대한 개입 권한이 없다고 하여 마지막 이사회를 그대로 마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KBS의 방향이 잘못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식으로는 임기를 15일밖에 남기지 않고 있다고 하여 한마디 항의도 없이 귀하의 처사에 침묵하고 만 데 대하여 이사회를 책임진 소생으로서는 지금 깊은 자책의 염(念)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 야반에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매우 슬프게 생각합니다.

혁명이 아니라면 이번 인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이들을 지켜본 한에 있어서는 모두가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부임 하루 이틀에 3년을 지켜본 이사회의 의견 하나 없이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하도록 추방할 수 있습니까.

이런 혁명, 이런 비인간적인 조치를 사장으로 선임됐다고 하루아침에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보고 잘 안다고 하여 이러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입니까.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서 글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80 일생에 이런 일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당한 본인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이것을 일반사회 또는 KBS 직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KBS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국민의 방송입니다. 이렇게 부하들을 다루려는 새 사장에게 KBS를 이대로 맡겨서 된다는 말입니까. 말문이 막혀서 글을 더 이어갈 수 없습니다. 이미 시행된 일, 공기관을 매우 사적(私的)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데 대해서 아직 임기를 다소 남기고 있는 공인으로서 크게 묻고 우리나라 언론도 어수선한 때라고 해서 이런 중대사를 적당히 넘기지 않기를 갈망하면서 몇 줄 올립니다. 처음 뵙는 사장에게 무슨 사감(私感)이 있을 리 없습니다. KBS와 KBS 사원, 그리고 국민이 눈에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KBS 이사장 2003년 5월 1일 새벽 지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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