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곳]서울옥션 박혜경 경매사의 전통정원 '희원'

  • 입력 2003년 4월 29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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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빴던 경매를 마치고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경기 용인시의 전통 정원 ‘희원’을 찾은 미술경매사 박혜경씨. 이 곳에서 전통 정원의 자연미와 돌조각의 절제된 아름다움에 푹 빠지곤 한다. -용인=이광표기자
숨가빴던 경매를 마치고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경기 용인시의 전통 정원 ‘희원’을 찾은 미술경매사 박혜경씨. 이 곳에서 전통 정원의 자연미와 돌조각의 절제된 아름다움에 푹 빠지곤 한다. -용인=이광표기자
2001년 4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장에서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18세기 그림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가 7억원에 낙찰됐다. 국내 미술경매(현대미술 고미술 포함) 사상 최고가였다.

2002년 5월 경매에선 박수근의 유화 ‘아이 업은 소녀’가 5억500만원에 팔렸다. 국내 현대미술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이달 초엔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5억2000만원에 낙찰돼 국내 미술경매가 2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신기록 행진의 한복판엔 늘 여성 경매사인 박혜경(朴惠卿·37) 서울옥션 경매팀장이 있었다. 그는 몇 명 안 되는 국내 미술전문경매사 가운데 단연 선두 주자.

경매는 시종 숨 가쁜 격전의 현장이다. 2, 3초마다 응찰가가 수백만원씩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마다 박 팀장은 당당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구매자들의 베팅을 유도한다. 작품의 미학이나 투자가치 등을 서너 단어로 집약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다.

8년 전 대기업 홍보직을 그만두고 미술 경매에 뛰어들어 70여 차례의 경매를 치러낸 박 팀장. 그는 격전을 치르고 나면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옆에 있는 전통 정원 ‘희원(熙園)’을 찾는다. 경매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자연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28일 오후 이 곳에서 만난 박 팀장은 진입로에서부터 희원을 예찬했다.

“진입로가 참 매력적이죠. 왼쪽으로 시원한 물이 있고 오른쪽으로 아늑한 담이 있습니다. 담의 문양 하나, 기와 하나, 이름 모를 야생화 하나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습니다. 게다가 좌우로 늘어선 옛 돌조각을 보면 이것이 바로 담백함이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정원 마당에 들어서면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전통 정원의 모습이 펼쳐진다. 한가운데에 연못이 있고 그 둘레에 정자, 석등(石燈), 석불(石佛)과 나무들이 있다.

“옛 선비들이 정원에 거닐면서 시를 읊고 세상을 고민했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박 팀장.

그는 희원 옆에 있는 호암미술관도 빼놓지 않았다.

“8년 전 경매를 처음 시작할 때 현대미술만 했는데 이제는 고미술도 해야 합니다. 호암미술관의 문화재 명품을 보면 고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박 팀장은 정원 옆 찻집에 들른 뒤 뒤편에 있는 수십 개의 돌장승 사이로 걸어갔다.

“돌장승 얼굴을 보면 소박하고 무심하죠.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돌아서려 하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전통과 자연, 돌조각에 푹 빠진 모습이다. 냉정한 경매사에게 이런 감춰진 면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돌장승 옆에서 박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

“7월엔 옛 돌조각을 한데 모아 경매를 해볼 생각이에요.”

그는 역시 프로 경매사였다.

용인=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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