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동서남북/반항을 부르는 '사랑의 매'

  • 입력 2003년 4월 24일 21시 43분


경찰관이 범죄 피의자를 때리며 조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사회가 급속히 민주화하기 시작하면서 90년대 들어서는 이런 풍경은 전설이 돼버렸다. 경찰관이 피의자를 때리면서 조사를 하다 적발되면 형법상 ‘독직(瀆職) 폭행’에 해당된다. 형법은 이 경우 일반 폭행범죄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가 어떤 목적에서건 학생을 때리는 것 역시 독직폭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가 학생을 때릴 경우 그동안 ‘교육을 위한 체벌’ 또는 ‘사랑의 매’같은 수사(修辭)로 정당화되곤 했다. 교단 일각에서는 일정 범위의 체벌은 필요하다는 견해가 아직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는 점차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학생을 때리면서까지 이뤄야 할 교육적 목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 는 물음을 학부모들뿐 아니라 학생들까지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EBS 교육방송이 3월 31일 방송한 ‘체벌, 필요악인가’ 프로그램에 따르면 체벌을 받은 학생 가운데 ‘잘못을 반성한다’는 대답은 6.3%에 그쳤다. 체벌을 당할 때 학생들은 반항 충동과 인격적 모독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같은 반응은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교육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체벌이 도리어 반항충동이나 모독 같은 비교육적 태도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칠곡군의 초등학교에서 체벌을 받은 일부 학생들은 “학교를(학원처럼) 끊어 달라”고 부모에게 말했다고 한다.

‘피의자를 때리지 않고도 범죄를 밝혀낼 수 있는가’에서 수사관의 ‘실력’이 갈린다. 새로운 조사기법을 개발해 강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범죄를 밝혀내는 사람이 유능한 수사관이다.

학교 체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교사는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도 말을 듣지 않아 때렸다”며 “교육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이는 피의자를 조사하는 경찰관이 “몇 번이나 자백을 하라고 했는데도 듣지 않아 정의를 위해 때렸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교든 가정이든 경찰서든 때리지 않고 의도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실력’이 있는 사람이고 ‘정당성’ 또한 얻을 수 있는 시대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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