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피살사건, 불륜 못밝힌 장모가 살해 사주

  • 입력 2003년 4월 1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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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발생한 여대생 하모씨(당시 22세·서울 강남구 삼성동) 피살사건은 자신의 사위(30·법조인)와 하씨간의 불륜관계를 의심해온 윤모씨(58·여·부산 서구 동대신동)의 지시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윤씨의 조카 윤모씨(42)와 윤씨의 고교 동창 김모씨(41)가 치밀한 계획 아래 범행을 저질렀으며 이들은 하씨의 아버지(58)도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납치 살해=경기지방경찰청은 배후인물 윤씨가 2001년 10월경 조카 윤씨에게 “차라리 (하씨를) 죽여버리는 것이 낫겠다. 죽일 사람을 알아봐라”고 말해 사실상 하씨의 살인을 지시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윤씨가 2001년 8월경부터 조카를 시켜 사위와 하씨를 미행하게 하는 등 불륜의 증거 확보에 나섰으나 실패하자 이같이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조카 윤씨는 같은 해 10월12일 직업이 없이 지내는 김씨에게 1억7500만원을 주겠다고 해 범행에 끌어들인 뒤 착수금 5000만원을 건넸다.

이들은 처음엔 하씨를 약물로 살해하기로 공모했으나 접근이 여의치 않자 공기총으로 살해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지난해 2월 공기총을 구입한 뒤 납치에 가담한 전모씨(24) 등 6명을 끌어들였다.

윤씨와 김씨는 지난해 3월 초 두 차례 납치에 실패한 뒤 6일 오전 5시37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하씨 집 앞에서 전씨 등 3명과 함께 수영장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 하씨를 납치했다. 이어 대기시켜 놓은 승합차에 태워 비닐 끈으로 손발을 묶고 눈과 입에 테이프를 붙인 뒤 쌀포대를 씌웠다.

두 사람은 전씨 등 3명과 납치장소에서 헤어진 뒤 곧바로 차를 몰아 평소 윤씨가 지리를 잘 알고 있던 경기 하남시 검단산 입구에 차를 세웠다.

이어 김씨가 반항하는 하씨를 어깨에 메고 산으로 100여m 올라가 내려놓은 뒤 윤씨가 건네준 공기총으로 머리와 얼굴 등에 6발을 쏴 살해했다. 시신은 낙엽으로 덮어 위장했다. 납치에서 살해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는 범행 후 자신의 집 근처 공중전화를 통해 고모 윤씨에게 “(하씨) 납치 살해에 성공했다”고 알린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이 밝힌 범행 동기는 돈이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김씨로부터 “하씨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던 2001년 말경 하씨의 아버지를 죽이라는 지시를 공범 윤씨로부터 받고 ‘함께 사업하자’며 네 차례 접근했으나 실패했으며 이 지시 역시 윤씨의 고모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자백=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11일 국내로 압송된 윤씨와 김씨는 살해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다 하루 만에 범행 일체를 시인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범행 전에 여러 차례 그만두려고 했는데 윤씨가 ‘부산지역 폭력배를 보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었다”며 “도피 중에 하씨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수사=경찰은 13일 윤씨와 김씨에 대해 납치 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씨 아버지 살인 모의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경찰은 또 체포감금죄로 1월 1심에서 징역 3년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배후인물 윤씨에 대해 살인교사혐의를 추가 적용키로 했다.

수원=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여대생 河씨 가족표정▼

명문여대 법대생 하모씨 공기총 피살사건은 발생한 지 13개월 만에 주범들이 모두 검거됐지만 가족들은 더 큰 상실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하씨의 아버지(58·광고대행업)는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13일 “딸에게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륜관계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며 죽음으로 내몬 윤모씨(58·여·구속) 등이 직접 살인을 한 범인들보다 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딸이 죽은 지 1년이 됐지만 가족들 모두 그동안 편안히 잠 한번 자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씨가 살해된 이후 단란했던 하씨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아버지는 직접 범인들을 잡기 위해 생업도 내팽개쳤다.

지난해 6월에는 주범 윤모씨(42)가 도피한 베트남으로 건너가 윤씨가 숨어 지내던 윤씨 아버지의 봉제공장을 기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윤씨가 중국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어머니(51)는 상실감에 3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가족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자고 권유했으나 “철저하게 아파야 조금이나마 먼저 간 딸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며 치료조차 거부했다.

지난달 15일 딸의 1주기 때 집 근처 봉은사를 찾은 어머니는 “영혼이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최근 하씨 가족들은 짐을 꾸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한적한 교외로 이사했지만 딸의 유품은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새집에도 딸의 방을 꾸몄고 딸의 생전에 못내 마음에 걸렸던 낡은 화장대를 버리고 새 화장대를 들여놓았다.

아버지는 “딸의 23번째 생일이었던 4일 가족들은 또 한번 가슴을 움켜쥐어야 했다”며 “이제 모든 게 끝난 만큼 아내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수원=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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