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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2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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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 행사의 핵심 공문서인 인감증명서를 제3자가 손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범죄에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감증명서를 도용당하면 부동산 매매, 제3자 보증, 차량할부 구매 등 각종 거래와 재산권 행사에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26일부터 ‘인감증명서 전국 온라인 발급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전국 어디서나 빠르게 인감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한 것.
그러나 이 시스템은 본인 또는 지정인만 발급받을 수 있도록 ‘인감증명보호’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제3자가 허위 위임장을 만들어 대리 발급받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 취재팀이 이달 들어 서울 지역 10여개 동사무소에서 당사자의 동의없이 위임장을 만든 뒤 제3자 명의로 발급신청을 한 결과 10개 동사무소가 모두 인감증명서를 발급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동사무소측은 위임인과 대리인의 관계를 전혀 확인하지 않아 절차상 허점을 드러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만 해도 대리인이 지참한 위임인의 인감을 동사무소 직원이 직접 확인한 후 발급해 도용이 사실상 어려웠다.
각종 거래에서 법률적으로 본인임을 입증하는 인감증명서는 작게는 휴대전화 신청에서 크게는 토지매매에 이르기까지 사용되고 있다.
토지매매의 경우 필요한 서류는 위임장, 인감증명서, 매도용 인감증명원, 등기필증, 주민등록 등초본.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등기필증은 인감이 찍힌 위임장을 소지하면 6만∼8만원이면 쉽게 법무사의 ‘확인서면’을 받을 수 있었다.
법무사가 이 과정에서 거래 당사자들의 주민등록증 지문까지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반적으로 생략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제3자가 남의 땅을 보여준 뒤 이 같은 서류를 위조해 판매할 경우 구입자는 크게는 전액을, 최소한 계약금은 떼일 수밖에 없다.
또 자동차 할부계약시 구입자의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만 있으면 일단 매매가 가능해 임의로 차를 구매할 수도 있다.
인감증명서 발급이 엄격했던 개정 전부터 인감을 위조한 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2000년 10월에는 인감증명서와 운전면허증을 위조한 뒤 남의 아파트를 담보로 9억여원을 대출받은 장모씨(45) 등 3명이 적발됐다. 또 2001년 2월에는 노숙자들로부터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을 구입해 부동산과 차량을 사들여 되파는 수법으로 15억여원을 챙긴 일당 10여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공인중개사 이영신씨(55)는 “새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인감이 도용될 경우 본인 몰래 집을 팔아넘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2일 ‘인감증명보호’ 신청을 한 이모씨(35)는 “도용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따라 동사무소를 찾아가 본인만 발급받을 수 있도록 보호신청을 했다”며 “새 제도가 편리성만 앞세워 보안성을 너무 허술하게 만든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행정자치부 주민관리과는 “실제 거래에는 주민등록등본 등 다른 서류도 구비돼야 하기 때문에 인감증명서만으로는 범죄가 성립되기 어려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만약 위임장에 인감을 찍도록 할 경우 새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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