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음지]②쪽방 사람들…3000여명이 '1평살이'

  • 입력 2002년 11월 3일 19시 03분


서울 종고루 돈의동 일대 '쪽방 골목'. 이곳에는 400여명의 저소득층 주민이 폐지수집과 무료급식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 박영대기자
서울 종고루 돈의동 일대 '쪽방 골목'. 이곳에는 400여명의 저소득층 주민이 폐지수집과 무료급식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 박영대기자
3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일대 ‘쪽방’지역. 지하철 1, 3, 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에서 불과 100m 떨어진 도심 한복판이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한참 헤맨 뒤에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93개의 쪽방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시장에서, 광복 후에는 사창가로, 윤락행위 단속이 심해지고 심야 통행금지가 실시되자 집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잠만 자는 방’으로 변했다. 그 뒤에는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서 온 사람들과 외환위기 이후 오갈 데 없게 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수세미 장사를 하며 3년째 쪽방 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씨(65)를 따라 그의 방에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1평이 채 안 되는 공간은 한 번도 빨지 않은 듯한 이불과 옷가지, 빈 소주병, 라면국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냄비 등으로 가득했다. 가재도구라곤 TV 하나밖에 없었다.

정모씨(47)는 동대문구에 있는 한 폐지 수집상에 나가고 있다. 4년 전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기동하기가 불편하지만 밀린 방값을 내려면 하루도 거를 수 없다.

정씨는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손수레를 빌려 폐지수집을 하면 하루 1만5000∼2만원은 벌 수 있지만 갈수록 벌이가 시원찮아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적지만 고정수입이 있는 이들은 그래도 나은 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중구 남대문로 5가 쪽방 지역에 혼자 사는 김모씨(70)는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보통 남산 어린이놀이터나 쪽방상담소에서 제공하는 무료 급식으로 때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서울에는 종로구 돈의동과 창신동, 중구 남대문로5가동, 용산구 동자동, 영등포구 영등포동 등 5개 지역에 3855개의 쪽방이 있다.

이들 지역은 대형 재래시장이나 기차역 지하철역에 가까워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기 편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원이 파악된 쪽방 사람들은 2824명. 이 가운데 593명이 정부의 보호를 받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다. 보증금 없이 하루 6000∼8000원, 또는 한달에 15만∼24만원의 월세를 내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름에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날이 추워지면 다시 쪽방에 들어가는 등 계절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실제 쪽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3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쪽방은 낡은 목조건물이어서 누전이나 부주의에 따른 화재위험에 노출돼 있다. 또 세면시설이나 화장실이 부족해 전염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도 많다. 종로구 쪽방상담소 지영식 소장은 “종로구 일대 쪽방 거주자의 약 20%는 결핵 간질환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자립을 위한 직업훈련과 함께 의료지원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