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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7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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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학교 축제행사나 문학 모임에서 접하는 이 시화전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낯익은 가을의 모습이다. 인천지역 대부분 중고교가 10월 학교 축제 때 시화전을 열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중학교도 25일 ‘은행나무 축제’를 열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는 시화전을 위해 수행 평가라는 ‘무기’를 사용했다.
글쓰기를 싫어하고 컴퓨터 게임만 좋아할 것 같은 남학생들의 가슴에도 시심이 흐르는지 즐거워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시가 안 써진다고 제법 예술가다운 고민도 하고, 또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못 그리겠다고 엄살을 피우기도 했다. 유행하는 노랫말을 자기가 쓴 시처럼 써서 냈다가 친구들의 야유를 받고 다시 창작시를 쓰느라고 고생한 아이들도 있다.
학생들은 시도, 그림도 뚝딱 해치운다. 대충 작품을 완성한 것 같은 데도 시와 그림에는 청소년들이 가슴 속 깊이 하고 싶은 말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같은 소재라도 학년에 따라 다른 세계로 표현되는 걸 보면, 시를 쓰면서 아이들의 생각이 쑥숙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중1년생들의 시에는 그늘이 없다. 과자 ‘프링글스’을 먹으면서 느끼는 달콤한 행복도 시가 되고, ‘찌찌뽕’놀이도 그 장면이 떠오르도록 재미있게 썼다. 체육시간에 하는 ‘씨름’ ‘줄넘기’ ‘핸드볼’에서는 운동장을 차지한 남학생의 신나는 마음이 전해진다.
중2년생의 시에는 놀기 좋아하면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 부담이 드러나 있다. 시험 앞두고 무너지는 작심 3일의 자신을 야단치고 , 공부하기 싫은 데 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고통은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미운 2학년이라고 용돈 때문에 엄마와 다툰 이야기, 부모님 말 안 들은 것을 후회하는 내용 등도 있다.
중3년생들은 고학년답게 통일 문제, 월드컵 등을 시의 세계로 가져온다. 학교와 시험이 자기들을 옥죄는 감옥으로 표현되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가을풍경에 담기도 한다.
한편 사랑의 아픔과 기쁨을 표현한 ‘첫사랑’이나 ‘그녀와의 이별 일년 후’ ‘내 마음에 뿌려진 씨앗’ 등의 시를 읽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축제를 보러 온 부모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남학생의 시 세계를 감상했다.
시화전에는 순수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그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오래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신은주(44·인천 만수북중 국어교사·muisim@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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